경복궁에 75.5칸 있었다는 측간…유적은 왜 처음 확인됐을까

"대부분 1∼2칸으로 작아…향후 조사서 대형화장실 또 나올 수도"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한 뒤인 1888∼1890년 무렵 제작한 '경복궁배치도'를 보면 궁내에는 측간, 즉 화장실이 모두 75.5칸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 건물에서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뜻한다.

화장실은 근정전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궐내각사(闕內各司)에 17칸, 동편인 동궁 권역에 16.5칸이 있었다고 한다.

광화문에서 근정전을 지나 육각 정자인 향원정까지 이어지는 중심축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8일 동궁 권역에서 발견한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6∼1.8m인 네모꼴 석조 구덩이 형태의 대형 화장실 유적을 소개하면서 "조선시대 궁궐 내부에서 나온 최초의 화장실 유구(遺構, 건물의 자취)"라고 강조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이 화장실은 1868년에 만들어 약 20년간 사용했다.

구덩이에서 기와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위에는 기와지붕을 올린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건물의 기초는 후대에 훼손돼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경복궁에서는 1991년부터 대대적으로 발굴조사와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많았다는 화장실 유적이 처음 확인된 이유는 무엇일까.

또 이번에 발굴한 화장실 유적 위에 있던 건물은 4∼5칸이고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경복궁에는 이렇게 큰 화장실이 15개 이상 있었을까. 이에 대해 양숙자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경복궁배치도를 보면 국립민속박물관 부지에 대형 화장실 2곳이 있었던 듯하고, 대부분은 1∼2칸으로 규모가 작아 발견되지 않은 것 같다"며 "경복궁에서 발굴조사를 추가로 진행하면 또 다른 화장실 유적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왕과 왕비는 휴대용 변기라고 할 수 있는 매화틀을 썼다"며 "새롭게 확인된 화장실 유적은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이 함께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발굴 현장에서 화장실이 나온 사례는 적지 않다.

익산 왕궁리 유적과 양주 회암사지에서도 길이 10m가 넘는 화장실 유구가 발견됐고,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는 커다란 돌을 절묘하게 배치한 변기가 나타났다.

경복궁 화장실 유적에서 돋보이는 점은 물을 이용한 정화 체계다.

화장실 구덩이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다.

정영훈 경복궁관리소장은 "창덕궁에 복원된 자그마한 화장실이 있는데, 분뇨를 자주 치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복궁 화장실은 자주 분뇨를 제거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장은 "경복궁 대형 화장실은 하루에 150여 명이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1∼2년에 한 번쯤 분뇨를 제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가 제작한 영상을 보면 화장실에는 일정한 양의 물이 있다.

오물은 자연스럽게 가라앉고, 수위가 오르면 정화수가 출수구를 통해 빠져나간다.

물은 분뇨의 발효를 촉진해 악취를 줄이는 역할도 했다.

이 같은 정화 체계가 현대식 정화조와 유사하고 외국에 유례가 없다고 하지만, '세계 최초'라는 평가를 하기에는 다소 어색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동양과 서양은 전통적으로 분뇨를 정화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서구에서는 분뇨를 별도의 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하지만, 동아시아에는 분뇨를 모아 재활용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물로 오염물을 정화한 뒤 외부에 배출하는 구조가 발달한 기술임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