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 식은 투자자들... 국내 상장으로 발길 돌린 마켓컬리[마켓인사이트]

≪이 기사는 07월09일(13:2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마켓컬리가 미국 증시 대신 국내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전략적 선택"이란 회사측 설명과 달리 업계에선 기업가치와 사업모델에 대한 시장의 냉랭한 분위기를 확인한 컬리가 사실상 해외 상장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9일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는 2254억원 규모의 시리즈F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기존 투자사인 에스펙스 매니지먼트와 DST글로벌, 세콰이어캐피탈 차이나, 힐하우스 캐피탈 등이 참여했다. 지난 4월 샛별배송 전국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CJ대한통운이 투자자군에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새로운 투자자는 밀레니엄매니지먼트가 유일하다.

애초 컬리 측은 3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를 통해 투자유치를 진행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벤처캐피털(VC) 들이 신규 투자를 검토했지만 사업 모델 확장이 쉽지 않은 데다 이미 높은 몸값 탓에 투자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의사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마켓컬리 제공]
컬리는 투자유치 발표 직후 “그동안 해외증시와 한국증시 상장을 동시에 탐색해왔으나, 사업 모델과 국내외 증시 상황 등 다양한 조건을 면밀히 검토한 후 최근 한국증시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투자업계에선 현재 컬리가 시장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 수준에선 미국 상장을 강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업계에선 국내 기업이 미국 상장을 시도하기 위한 최소 상장전 기업가치를 3조~4조원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IB)들도 해당 수준의 기업가치에 오른 기업들을 잠재 고객으로 각 해외 기관에 소개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미국 증시에서 흥행에 성공하려면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수요 태핑(사전 조사)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행적으로 최소한의 밸류가 30억달러(3조 5000억원)는 돼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각종 비용도 만만치 않다. 쿠팡은 앞서 미국 증시 상장 과정에서 IB 수수료만 1000억원을 넘게 지급하는 등 3000억원 이상을 썼다는 후문이다. 연간 수십억원 수준의 상장 유지 비용과 미국 현지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소송 리스크에 대응하기에도 현재 컬리의 기업규모로 쉽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야 상장 전 기업가치가 1조~2조원 수준인 기업들이 손에 꼽히지만 미국 시장에선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게 현실"이라며 "야놀자·무신사·토스 정도로 이미 기업가치가 높거나 사업모델이 특수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상장을 강행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미국 상장을 강행하기 위해 기업가치를 키우는 일도 한계에 달했다. 시리즈F까지 이어지면서 창업자인 김슬아 대표의 지분은 6.67%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추가로 투자 유치를 단행해 몸값을 키우고 싶어도 대주주 지분 희석을 더 감당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 주주들도 이미 부풀어오른 기업가치에 추가 투자까지 하면 향후 높은 수익률로 자금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을까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지부진한 몸값과 미국 상장 실패로 컬리의 취약한 지배구조 문제가 재점화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컬리는 성장 과정에서 대기업 등 전략적투자자(SI)들에 회사를 매각하길 희망한 투자자들과 김슬아 대표 간 갈등이 물밑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안착하면서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김범석 전 쿠팡 이사회 의장과 달리 회수를 둔 양 측의 갈등이 촉발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 국내 증시 상장 요건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은 컬리에겐 투자금 회수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한국거래소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기업들의 국내 상장을 독려하기 위해 지난 3월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을 완화했다.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는 기업이면 적자를 내고 있더라도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했다.다만 본질적인 사업 모델에 대한 '회의론'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국내 상장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란 평가도 나온다. 연간 거래액(GMV)을 따져봐도 컬리는 쿠팡의 5% 수준에 그친다. 취급 품목도 ‘샛별배송’을 필두로 한 신선식품이 대다수다. 최근 쓱(SSG)닷컴과 같은 유통 ‘공룡’이 컬리의 영역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대규모 적자를 부담하며 자체 물류망을 구축한 쿠팡과 달리 컬리는 CJ대한통운 등 외부 물류업체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향후 순이익을 내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컬리는 지난해 1163억원의 적자를 냈다. 2019년보다 100억원 이상 손실이 늘어났다. 설립 이후 누적 적자만 약 2700억원에 달한다. 쿠팡 역시 지난해 5500억원 넘는 적자를 냈지만 2019년(7205억원)에 비하면 손실을 현저히 줄였다.

VC업계 관계자는 “해외 상장에 뒤따르는 비용 등을 감안하면 어정쩡한 밸류로 미국 증시에 도전할 필요는 사실 없다”며 “원하던 기업가치의 60% 수준만 인정받아도 국내 증시 상장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준호 / 김종우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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