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직원들 없는데…'방범 로봇'이 지키는 빅테크기업 [실리콘밸리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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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무풍지대' 상점 등과 달리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실리콘밸리를 구성하는 도시)에 있는 구글 본사 '구글플렉스'는 고요했다. 각 사무동 출입구엔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back! We're so happy to have you here)란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문은 잠겨 있었다. 구글 로고가 건물 벽에 크게 박혀 있어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던 카페와 안드로이드 캐릭터 조형물 근처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적막감 감도는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환영한다' 포스터에도 사람은 없어
애플, 구글 등 9월부터 복귀 추진
직원들 "재택근무가 좋다" 반발
MS는 위로금 지급하며 이탈방지
차로 7분 떨어진 '삼성 리서치 아메리카' 캠퍼스도 상황은 비슷했다. 넓은 주차장엔 차가 서너대 밖에 안 보였다. 건물 출입구 근처엔 역시 사람이 없었다. 삼성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방범 로봇이 기자 쪽으로 렌즈를 맞추고 경계할 뿐이었다.
굳게 닫힌 구글 본사
지난 1일 미국에 입국한 기자가 처음 느낀 실리콘밸리의 인상은 '코로나19 무풍지대'라는 것이다. 공항, 대형마트, 식당, 아울렛 등에선 마스크를 벗고 활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하지만 빅테크기업 본사 등에선 '코로나19 경계령'이 아직 해제되지 않은 분위기다. 산타클라라에 있는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인텔 정문 출입구는 굳게 닫혀있었다. 인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CPU(중앙처리장치)시장의 경쟁업체 AMD 건물에서도 사람의 움직임은 찾을 수 없었다.
현재 직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각자 거처에서 재택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구글플렉스에서 기자에게 나갈 것을 요청한 한 보안요원은 "실리콘밸리 대기업에 다니는 여동생도 수 개월 째 재택근무 중"이라고 말했다.실제 기자가 사는 한 산타클라라 아파트의 공용 업무공간은 노트북을 갖고 일하는 20~30대 젊은 현지인들로 하루 종일 붐빈다. 주말 상황도 다르지 않다. 실리콘밸리 현지 기업 관계자는 "구글, 애플,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아직 해제하지 않은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9월부터 '사무실 출근' 본격화
이런 광경은 오는 9월께면 사라질 전망이다. 빅테크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재택근무 종료' 관련 군불을 떼고 있어서다. 팀 쿡 애플 대표(CEO)는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9월부턴 사무실로 복귀하고 1주일에 3일은 출근해야한다"고 공지했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원격 또는 재택근무를 하고 월·화·목요일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식이다. 쿡 대표는 사무실 출근을 의무화한 것에 대한 이유로 "협업을 위한 시간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구글도 3일 출근, 2일 재택 또는 원격 근무하는 '하이브리드 체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CEO는 직원들에게 "사무실을 다시 열면 직원의 20%는 재택근무를, 또 다른 20%는 근무 부서가 아닌 다른 지역 사무실에서 원격근무를 할 수 있다"며 "60%는 사무실로 출근해야할 것"이라고 알렸다. 아마존 등도 '주 3일 의무 출근' 제도를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실리콘밸리 오피스 시장도 들썩
직원들의 복귀가 예상되면서 실리콘밸리 현지 부동산 시장에서도 들썩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뉴스를 주로 다르는 '머큐리뉴스'는 최근 '사우스베이(실리콘밸리) 오피스 시장이 전환점을 맞았다'는 기사에서 "실리콘밸리 오피스시장이 지난 2분기에 약 3년 만에 최고 거래 실적을 기록했다"며 "이 지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코로나19 여파에서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보도했다. 머큐리뉴스는 기업들이 2021년 4월부터 6월까지 사우스베이에서 280만 제곱피트의 사무실 공간을 채웠는데 이는 2018년 2분기 이후 가장 좋은 성과라고 콜리어스는 보도했다.이 신문은 시장조사업체 콜리어를 인용해 "신규 임대, 임차인이 2분기에 입주한 사전 임대 청사, 기업이 직접 매입한 청사 등이 들어찬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애플은 지난 5월 본사 인근 서니베일에 70만1000스퀘어피트(6만5125㎡) 규모 사무실을 추가로 임대했다. 넷앱(NetApp)은 지난 4월 산타나 로에 있는 총 30만1000스퀘어피트의 사무실 건물을 임대해 본사를 산호세에서 이전하기로했다. 구글은 지난 5월 최대 2만5000명의 직원이 근무할 수 있는 새너제이 시내의 복합용도 주택지 개발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사무실 근무 싫다" 반발…MS는 170만원 위로금 지급
실리콘밸리가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재택근무에 적응된 빅테크 기업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다는 이유에서다. 사무실에 복귀하기 싫은 직장인들이 사표를 쓰면서 기업들이 난처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퇴직자 수는 400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퇴직률도 2.7%에 달했다.IT전문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지난 6월 애플의 자체 설문에 참여한 직원 1749명 중 약 90%가 "유연한 근무 옵션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근무처가 유연하지 않아 동료 중 일부가 애플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엔 58.5%가 "매우 동의한다"고 답했다.근무 복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자 일부 기업들은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직원 이탈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을 정했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직원들에 1500달러(약 170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한다. MS는 이번 보너스 지급에 약 2억달러(약 2300억원)를 들일 것으로 전망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로 근무 환경이 사무실 출근으로 바뀐데 따른 격려 차원의 보너스다. 캐슬린 호건 MS 최고인사책임자는 "보너스가 7월이나 8월 중 지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