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대신 욕먹는 2030 [여기는 논설실]

사진=뉴스1
지난주 연일 1300명대를 기록하던 코로나 하루 확진자 수가 어제는 소폭 줄어 1100대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4차 대유행은 진행중이다. 이렇게 확산된 이유가 무엇인지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정부의 섣부른 방역완화책과 지지부진한 백신 접종, 그리고 방역 피로감에 따라 국민들의 긴장도가 떨어진 것 등이 모두 확진자가 늘어나는데 일조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할 때마다 스스로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늘 국민들 탓을 해왔다. 더욱 큰 문제는 탓을 하는 국민도 그 때 그 때 정부 편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난해 8·15 광복절 집회가 열렸을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집회 주최자를 살인자라고 했다. 당국은 집회 주최자들 대부분을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그 다음달인 지난해 9월 초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연설에서 광복절 집회를 코로나 재확산의 주범으로 아예 못박았다. 이 대표의 연설은 이렇다. "그렇게 쌓은 방역의 공든 탑에 흠이 생겼습니다. 8.15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됐습니다. 방역을 조롱하고 거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광복절에 이어 개천절에도 비슷한 집회를 열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법행동은 이유가 무엇이든 용납될 수 없습니다. 법에 따라 응징하고 차단해야 합니다"

지난해 8월 초까지 하루 평균 수십명대에 머물던 확진자 수가 8월 중순경부터 급증, 8월 말 400명대까지 늘어난 것이 모두 광화문 집회 때문이라고 여당 대표가 규정하고 집회 주동자들을 응징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광복절 집회 전후 확진자 상황을 보면 과연 이 집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이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당시 확진자 수는 광복절 집회 이틀 전인 8월13일부터 돌연 급증, 이날 100명을 돌파했다. 광복절 당일엔 279명으로 늘었고 다음날엔 197명으로 줄었다가 17일엔 다시 246명으로 늘었고 이후 8월 말 9월 초 400명대까지 늘었다 다시 감소세로 전환됐다.

코로나 증상 발현 시간 등을 감안할 때 통상 확진자와 접촉 후 최소한 이틀 정도는 지나야 확진자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코로나 환자는 광복절 며칠 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고 대체로 8월17,18일까지 확진자는 광복절 집회와 무관한 확진자로 봐도 무방하다. 결과적으로 7월말 8월초에 걸친 여름 휴가 기간이 확진자를 추세적으로 늘렸다가 휴가 피크가 끝나가면서 줄어든 것이지 광복절 집회가 확진자를 늘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약간의 팩트 체크만으로도 이렇게 인과관계 확인이 가능한데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반 정부 집회인 광화문 집회를 코로나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보수단체들이 광복절 집회에 이어 개천절에도 집회를 열려고 하자 경찰은 버스 300여 대로 4㎞ 차벽을 세워 도심을 원천 봉쇄했다. 경찰 1만1000명을 동원해 30m 간격으로 검문했다. 지하철역은 아침부터 폐쇄했다. 서울 도심이 텅 빌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회를 앞두고 “반사회적 범죄”라고 했다. 당일 코로나 확진자는 75명이었다.
사진=뉴스1
약 1년이 흐른 지난 7월3일 민주노총이 서울 도심에서 불법 집회를 열었다. 8000여 명이 종로에 몰려 1시간 50분 동안 구호를 외치며 1.2㎞를 행진했다. 이날 전국 코로나 확진자는 794명 발생했다. 4차 대유행 위기에 몰려, 국민 생활을 구속하는 방역 수칙 완화도 미뤄진 상황이었다.

민주노총 집회 이후 확진자 수는 계속 증가, 일별 최대치를 갈아치우며 요즘엔 매일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민주노총의 집회가 코로나 4차 대유행의 원인인지는 명확치 않다. 이를 밝히려면 시위 참가자에 대한 조사와 시간적 연관성 등 면밀한 역학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 여당의 태도다. 지난해 여당 대표의 추론대로라면 이번 4차 대유행은 민주노총 집회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도 여당도, 지금은 여당의 대선 예비후보인 이낙연씨도 민주노총 탓을 하지 않는다. 요즘 확진자 수가 지난해 광화문 집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도 말이다.

정부가 대신 희생양으로 삼은 것은 2030세대다. 지난 7일 페이스북 ‘대한민국 정부’ 계정에는 ‘20~30대분들께 요청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사적모임 자제를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 게시된 홍보물에는 2030세대의 방역 노력을 당부하며 ▲증상이 없더라도 진단 검사를 받아주세요 ▲당분간 모임·회식 자제해주세요 라고 강조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8일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 자리에서 "수도권의 20~30대 여러분, 방역의 키를 여러분이 쥐고 있다. 조금만 참고 인내해달라"고 요청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코로나 확산을 은근슬쩍 2030세대 탓으로 돌린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최근 확진자의 40% 이상이 2030세대라는 점을 근거로 한 듯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2030 세대중 백신 접종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며 이들을 탓하는 것은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가 책임을 미루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우주 고려대학교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 백신이 없다. 백신이 없는데 2030세대에게 핑계를 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백신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백신을 들여오고 있다"며 "2030세대는 잘못이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집회 후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민주노총에는 감히(?) 화살을 돌리지 못하니 만만한 2030세대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발발 후 한 때 방역모범국 취급을 받던 한국은 최근 방역도 안되고 백신 접종도 제대로 안되는 나라가 됐다. 초기에 방역모범국 취급을 받은 것은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막지 않았음에도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서로 조심한 덕분이었다.

이런 국민들의 협조와 희생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언제나 정부 여당이었다. 방역을 정치에 이용이나 하려들고 방역에 대한 이해 수준은 낮아 방역대책은 늘 오락가락이었고 백신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 피해는 모두 국민 몫이다. 거리두기 4 단계로 수도권은 사실상 셧다운에 들어갔다. 최근엔 백신이 부족해 접종률은 거의 제자리 걸음이고 7월 중순까지 백신 '보릿고개'를 견뎌야 할 참이다.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