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줄 알라" 스포츠계는 물론 정치권·종교계도 규탄 경찰, SNS 인종차별 게시물 수사 착수 영국 정부도 '소셜미디어 만행' 신원 조사 방침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우승에 실패한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분노가 인종차별 공격으로 번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영국 경찰이 인종차별 공격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영국 정부는 소셜미디어 회사들에 인종차별 게시물 작성자의 신원 정보를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익명의 영국 정부 관계자는 이 신문에 "우리는 학대 메시지를 작성한 사람들에 대한 실제적 결과를 원하고 있다"라며 이 같은 계획을 설명했다.
앞서 런던 경찰도 이날 "축구선수들에 대한 모욕적, 인종주의적인 소셜미디어 글들을 조사할 것"이라며 수사 개시 방침을 밝혔다. 트위터는 지금까지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트윗 약 1천여개를 삭제하고 다수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으며, 페이스북도 인종차별적 게시물에 대해 즉각 삭제 조치했다고 밝혔다.
11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로 2020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에 패배, 사상 첫 유로 우승을 놓치자 성난 축구팬들의 난동이 벌어졌다.
특히 승부차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 마커스 래시퍼드(23)와 제이든 산초(21), 부카요 사카(19) 등 세 선수에게 소셜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이 쏟아졌다. 세 선수 모두 흑인이다.
이들 선수가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된 데 대해 스포츠계는 물론 정치권, 종교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일부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학대를 하는 이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라고 말하겠다"라며 "모든 팀원이 영웅"이라고 말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장인 윌리엄 왕세손도 "선수들이 혐오행위를 겪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즉시 중단되고 관련자들은 처벌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동당의 흑인 의원인 데이비드 래미는 트위터에 "우리가 이것 때문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며 선수들의 '무릎꿇기' 퍼포먼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유로 2020 경기 시작 전, 스포츠계의 인종차별 저항운동으로 자리잡은 '무릎꿇기' 퍼포먼스를 진행해왔다.
영국 성공회를 대표하는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도 선수들을 공격한 이들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잉글랜드 대표팀 역시 일부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 공격을 묵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축구대표팀의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종차별 공격을 자행한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모두를 하나로 만들게 하는 빛의 등불이 되어왔다.
국가대표팀은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의 '캡틴' 해리 케인은 트위터에 "그들은 인종차별이 아닌 지지를 받아야 한다"며 "소셜미디어에서 누군가를 모욕한다면 당신들은 잉글랜드 팬이 아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인종차별 공격을 받은 당사자인 래시퍼드도 이날 밤늦게 자신의 SNS 계정에 글을 올려 심경을 전하면서 인종차별 공격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내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라면 온종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존슨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 공격을 비난한 데 대해 일부에서는 '위선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축구대표팀이 경기 시작 전 '무릎꿇기' 퍼포먼스를 진행할 때 일부 관중은 야유를 보내기도 했는데, 관중들의 이러한 태도를 공개 비판해야 한다는 지적을 존슨 총리 등이 계속 무시해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