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가짜 위증자수 '단죄'…법무사 등 9명 징역형

사기범 재심 도운 범행 주도자 징역 6년…"죄질 극히 불량"
법무사 징역 4년…"사기범 측이 범행 기획하고 법무사가 실행방법 작성"
사기범이 재심을 받도록 돕기 위해 "위증했다"며 거짓으로 무더기 자수한 뒤 금품을 챙긴 이들이 줄줄이 징역형을 받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6단독 김택우 판사는 범인도피·위계 공무집행방해·무고방조 죄로 A(49)씨에 대해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다른 무더기 거짓 위증자수자 7명에게 징역 1∼2년 형을 내렸다.

이중 범행을 자백한 2명은 징역형 집행유예로 구속을 면했다.

자신의 법률 지식을 활용해 구체적인 범행 방안을 작성한 검찰 수사관 출신 법무사 B(64)씨는 범인도피·위계 공무집행방해·무고죄로 징역 4년 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 사기범 측과 검은 거래하고 가짜 위증 자수
재판부는 이 사건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시간상으로 살피기 위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2016년 10월 A씨 등 8명은 "휴대용 인터넷 단말기와 게임기 유통점 계약을 하면 대박 난다는 대전 한 정보기술(IT) 업체 전 대표 겸 판매법인 대주주 C(43)씨에게 속아 18억원을 투자했다"며 C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이들은 C씨의 사기죄 실형이 확정되자 돌연 "C씨는 죄가 없다"며 제 발로 검찰을 찾아갔고, 모두 위증죄로 벌금 500만원형을 받았다. 징역 2년 6월 실형을 살고 만기 출소한 C씨는 8명의 위증 자수 덕분에 재심 결정을 받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8명의 위증 자수는 가짜였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C씨 측에서 A씨 등에게 사기 피해 보전 등 명목으로 금품 거래를 약속하며 고소 취하·탄원서 제출 등을 부탁했다'는 검찰 수사 내용이 사실과 부합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A씨 등은 C씨 측으로부터 많게는 억대의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 내용, 공모자들 사이 금품 수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 사기 피해자들 도왔다 되레 사기범 측과 손잡은 법무사
재판부는 "사기범 C씨 측이 큰 윤곽을 세운 이 사건 범행 뒤에는 전문 지식을 활용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한 B씨가 있다"고 못 박았다.

B씨는 2019년 2월께 C씨 모친(66·수배 중)과 함께 위증 자수자들을 만나 "C씨가 무죄를 받을 수 있도록 위증 자수서를 검찰에 내면 (C씨 측에서) 벌금을 대신 내준다"라거나 "피해액에 더해 결과가 좋으면 금전적으로 보답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후 B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예상되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작성한 뒤 C씨 모친과 함께 그 내용을 위증 자수자에게 설명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B씨는 2017년 사기 피해자들이 C씨를 고소할 때 고소장과 진정서 작성 등을 도왔던 인물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C씨 측에 유리하게 형사사건 처리를 한 것이다.

재판부는 "위증 자수자들이 위증죄 벌금 납부 이후 B씨에게 감사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증거가 있다"며 "B씨가 C씨 모친으로부터 위증죄 벌금 납부용 자금을 받아 관리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재판부 "피고인들 반성은커녕 다시 허위 진술"
A씨 등은 법정에서 "IT업체 실제 운영자는 C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오너인 내가 지시한다'는 취지의 C씨 녹취록 등을 근거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사 B씨 컴퓨터에서 'C씨가 회사를 운영했다는 근거 정리' 문서가 발견된 점도 명시했다.

재판부는 "범행을 자백한 2명을 제외하고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데, 특히 A씨 등은 사실관계를 호도하고자 적극적으로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며 A씨 등에게 양형 기준 상한을 초과한 형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사기범의 재심을 위해 이 정도 규모로 거짓 위증 자수를 실행한 사례는 국내 사법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수도권 지역 한 형사전문 변호사(42)는 "법무사까지 관여했다는 법원 판단을 보니 기가 찬다"며 "검찰과 법원을 한꺼번에 농락했다는 점을 재판부가 엄히 꾸짖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