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회계 상담] ESG, 피할 수 없는 대세
입력
수정
글 김봉수 안세회계법인 상무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첫 글자를 조합한 ESG는 올해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다. 이미 30년 이상 다뤄져 온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사회책임투자(SRI) 등과 개념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던 이전과는 달리,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와 투자 결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각국의 연기금, 거대 자산운용사, 은행 등 주주와 채권자가 비재무적인 ESG를 투자의 지표로 삼고 있다.
ESG라는 용어는 2004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유엔 산하기구인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에서 처음 언급됐다. 2006년에는 뉴욕거래소에서 세계 1750개 주요 투자회사들이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을 선언했다. 이전에도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는 존재했지만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성을 종합적으로 공표했다. 유엔 PRI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시장의 준비기간으로 15년을 제시했다. 2020년이 본격적인 ESG를 위한 첫해가 된 것이다. 투자 판단 기준으로 거듭난 ESG
작년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ESG에 대한 공시 및 투자 가이드라인이 쏟아졌다. 이미 오랜 기간 준비해온 영향이며, 그 변화 또한 단기적으로 끝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 변화가 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로 코로나19와 미국 정부의 환경정책으로 인해 이 변화가 가속되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 및 금융기관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기후변화 등 환경의 영향과 그 변화에 대응하는 경영진의 자세 등 비재무적인 지표가 기업의 지속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심각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던 트럼프 정부에서 바이든 정부로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탄소중립을 골자로 미국 환경정책이 전환되면서 제조기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민간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Re100’은 재생에너지로 기업 사용 전력의 100%를 조달하겠다는 캠페인이다. 구글, 애플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SK그룹 6개 계열사가 신청해 국내 최초로 가입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이 아직 매우 낮기 때문에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가입 시도가 쉽지 않지만, 변화의 방향은 명확해 보인다. 각국의 연기금, 금융기관, 투자사들은 투자의사 결정에 ESG를 이미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2022년까지 투자 운영기금의 50% 이상을 ESG 요소를 고려해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는 환경 파괴, 인권 침해 등 ESG 원칙에 어긋난 활동을 하는 기업에 대해 투자를 줄이고 있다.
민간 투자기관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운용자산 기준 세계 1, 2위를 기록 중인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뱅가드가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블랙록은 ‘탄소중립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 참여를 선언하며 2050년까지 투자 포트폴리오를 탄소중립으로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화석연료로 25%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들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겠다는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대기업부터 도입된 ESG 정보 의무 공개
투자 목적으로 ESG 관련 지표가 중요해지면서 각국에서는 대기업을 시작으로 관련된 정보 공개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금융위원회가 환경정보와 관련해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전담협의체(TCFD) 국제 권고기준을 2030년부터 국내에 도입하는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사회적 책임은 금융위원회에서 추진 중이다. 자산이 2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는 2025년부터 의무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공시를 하도록 했다. 2030년 이후에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가 대상이다. 의무화와 별도로 자율적으로 매년 20%씩 늘려가도록 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에 대해서도 의무 공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지난 2019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의무화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통합해 공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외에서는 유럽연합(EU)이 2017년에 5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ESG 관련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지난 3월에는 EU 내의 은행,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금융공시제도(SFDR)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ESG에 대한 평가는 가능한가
ESG에 대한 평가는 기업이 얼마나 이윤을 남기는가가 아닌, 어떻게 남겼는가에 초점을 둔다. 이에 따라 관련 정보에 대한 평가가 쟁점이 되고 있다. 재무적 수치는 전년 대비, 경쟁사 대비 명확한 수치로 이익률이 좋아졌는지, 매출이 늘었는지, 수주 등 계약금액이 매출의 몇 퍼센트인지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반면 ESG 관련 정보들은 정성적인 항목들이라 점수의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평가를 위해서는 수치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위원회 구성 여부, 기부 여부, 탄소배출은 얼마나 줄였는지 등 정성적인 문항들에 점수를 주고 있다.
평가기관의 선택에 따라 같은 기업들에 대한 평가에도 편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에 재무성과를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 회계감사를 받는 것과 같이, 국제회계기준을 제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 (IASB)에서 ESG 지표의 표준화를 진행 중이다. 소위 빅4로 불리는 글로벌 회계법인들도 전담 컨설팅 조직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지표가 통일되기 전까지 혼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 기업들이 ESG에 형식적으로 지표만 일정수준 충족하고 폐해는 숨겨 친환경 경영인 척 포장하는 ‘그린워싱’이란 말도 만들어졌다. 유의해야 할 점은 ESG는 곧 사라질 트렌드도 아니고 점수만 높다고 통과되는 수능시험도 아니라는 점이다.
영업이익이라는 당장의 능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을 갖추어 믿을 만하고 오래 함께할 기업을 찾는 기준이다. 점수로 포장된 위선은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평가점수가 깎일 일은 영리하게 피해야겠지만, 수많은 논의를 통해 나온 지속가능성 요소를 충족해야 기업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기업 운영의 묘로 삼는 것이 답일 수 있다.
<저자 소개>
김봉수 안세회계법인 상무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삼일회계법인, PWC 컨설팅을 거쳐 현재 안세회계법인 상무로 재직 중이다. 법원 특수분야 감정인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주로 바이오 기업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