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심장'까지 판 두산의 부활…재무약정 '최단기 졸업'한다

늦어도 연말 약정해제…1년6개월만에 경영 정상화

산은서 빌린 3조 전액 상환 눈앞
두산타워·솔루스 등 잇단 매각
중공업 1.3조 유상증자로 숨통
인프라코어 매각대금 연내 확보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두산그룹은 산업은행과 3년 만기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었다. 5조6500억원(평가액 기준) 규모의 계열사 보유 주식과 유형자산 등을 담보로 내놨다.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 유동성 위기로 산은에서 3조원을 긴급 지원받는 대가였다. 2023년 6월까지 빌린 돈을 상환하지 못하면 채권단이 임의로 담보를 처분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그룹이 와해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딛고 두산이 1년여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자산 매각 등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때마침 경기 회복 훈풍도 불었다. 두산 계열사들은 올 들어 ‘깜짝 실적’을 내고 있다. 채권단 안팎에선 연내 ‘재무약정 졸업’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점을 연말로 보더라도 대기업 구조조정 역사상 최단기간인 1년6개월여 만에 ‘족쇄’와 같은 재무약정을 벗어나는 셈이다.

이례적 조기 졸업 유력

산은 고위 관계자는 13일 “두산은 약속한 자구계획안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고, 성과도 매우 뛰어나다”며 “당초 예정한 재무약정 만기보다 빠른 졸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선 두산이 연내 채무 잔액을 모두 상환해 재무약정에서 조기 졸업할 것으로 예상한다. 재무약정은 산은이 졸업을 통보하는 즉시 종료된다.

두산이 산은에서 빌린 긴급자금 3조원 중 채무 잔액은 지난 3월 기준 1조5469억원이다. 두산그룹은 재무약정 체결 이후 지난해 8월부터 클럽모우CC(1850억원), 두산타워(8000억원), 두산솔루스(6986억원), ㈜두산 모트롤BG(4530억원) 등 알짜 사업을 잇따라 매각했다. 두산중공업은 같은 해 12월 1조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 확보에 성공했다.혹독한 구조조정과 경기 회복에 힘입어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두산, 두산중공업 등 계열사들은 1분기에만 5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2분기 실적 추정치도 1분기 못지않다. 오는 9월 현대중공업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가 마무리되면 8500억원을 더 확보한다. 산은에서 대출받은 3조원을 연내 대부분 상환할 여력이 생긴다.

개별 기업과 맺는 자율협약과 달리 재무약정은 대기업그룹이 대상이다.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를 따지는 만큼 재무약정에서 조기 졸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근 10년을 살펴보면 2014년 6월 산은과 3년 만기 재무약정을 맺은 동국제강이 2년 만에 졸업한 게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두산이 올 연말까지 채무 잔액을 모두 상환하면 1년6개월이라는 역대 최단기간 졸업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산은 “두산의 성장과 변신 계속 지원”

산은도 두산의 이 같은 부활을 낙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룹 정상화에 최소 몇 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는 게 산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통상 재무약정 기간에는 자산 매각 등을 놓고 채권단과 해당 그룹 간 이견이 발생한다. 하지만 두산은 별다른 잡음 없이 자구안을 충실히 이행했다. 매력을 끌 만한 매물을 대부분 매각했다.두산의 부활은 임직원의 고통 분담과 함께 박정원 두산 회장이 보여준 ‘신뢰 리더십’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조조정의 마술사’로 불리는 이동걸 산은 회장도 두산 부활에 힘을 보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적기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결단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박 회장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두산에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했다.

두산이 재무약정을 졸업하면 그동안 족쇄였던 금융·유형자산의 담보 설정이 해지된다. 새 먹거리를 찾으려는 두산의 자율경영이 탄력받는다. 박 회장은 수소·드론 등 신사업을 앞세워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제2의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기존 주력 사업이던 화력발전 의존도를 낮추고 해상풍력, 수소, 가스터빈, 차세대 원전(SMR) 등 4대 성장사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 전환에 나섰다.

산은도 두산의 변신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국내 에너지사업의 미래를 위해 재무약정이 끝나더라도 두산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산은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수소와 SMR 사업에 정책금융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