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1야당도 '돈 뿌리기' 동조하면 포퓰리즘 누가 막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그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한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합의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합의 발표 후 100분 만에 번복한 것은 책임있는 제1야당 대표가 할 일이 아니다. 해명 내용도 그렇다. “소상공인 피해 보상에 우선 집중하고, ‘남는 돈’으로 전 국민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지만, 여당안을 덜컥 받았다가 당 내부에서 거센 비판을 받게 되자 변명하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번 일은 이 대표의 처신을 탓하는 수준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 대표가 스스로 강조해온 보수의 원칙과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헌 2조는 ‘헌정 질서의 중심인 자유·민주·공화·공정의 가치를 올곧게 실현하는 데 주력한다’고 적고 있다. 그 핵심은 ‘법적 절차’ 준수다. 국민의힘은 “전 국민 위로를 명분으로 또다시 현금을 살포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추경 3조원 삭감과 소상공인 피해 집중보상’을 당론으로 추진해왔다. 그런데 당 대표가 상의 없이 전 국민 재난금 지원에 합의해 준 것이다. 당장 내부에서 “제왕적 리더가 되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더 큰 문제는 미래세대에 빚 폭탄을 안기는 ‘퍼주기식 포퓰리즘’을 비판하고 견제해 오던 야당이 스스로 원칙과 소신을 저버렸다는 점이다. 집권 여당이 과반의석(172석)을 무기로 무차별 위로금 지급을 밀어붙이면 야당이 아무리 버텨도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적 열세로 여당에 밀리는 것과 스스로 손잡고 퍼주기에 나서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질 게 뻔하다. 이를 견제하고 막아야 할 보수야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명분도 없고 나랏빚만 늘릴 전 국민 위로금 지급에 덜컥 합의할 생각이 들었는지 묻고 싶다. 더구나 여당 대선주자조차 “한정된 재원을 외면한 ‘금 나와라 뚝딱’식 합의”라고 비판할 정도인데 말이다.

이 대표는 취임 후 한 달 동안 공정과 경쟁을 화두로 야합과 무사안일, 포퓰리즘에 찌든 정치판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 긍정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전 국민 위로금 논란에서 보듯 아직도 경험 부족으로 홀로 좌충우돌한다는 우려도 사고 있다. 이 대표는 본인은 물론, 국민의힘과 정치혁신을 갈망하는 수많은 국민을 위해서라도 좀 더 자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