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산업찾기] ‘아미노산 바꿔치기?’ 새로운 신약 개발법 제시돼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집니다. 아미노산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세 개의 염기, 즉 코돈입니다. DNA가 mRNA로 전사되고, mRNA를 구성하는 코돈에 따라 아미노산이 순서대로 정렬해 단백질이 됩니다.

염기는 A, U(T), C, G 등 총 4가지. 그렇다면 세 개의 염기로 나타낼 수 있는 정보는 43개, 총 64개입니다. 64개의 코돈이 20개의 아미노산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아미노산을 코딩하는 코돈이 여러 개여야 합니다. 이를 중복 코돈이라고 부릅니다.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재미있는 논문 한 편이 실렸습니다. 연구진이 대장균 유전자의 중복 코돈 중 일부가 인공 아미노산의 정보를 저장하도록 ‘유전자 재프로그래밍’을 한 것입니다.

코돈 3개 ‘리셋’시켜 인공 아미노산과 연결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우선 유전자가위 크리스퍼를 이용해 아미노산 중 세린(Serine)을 코딩하는 코돈 6개 (UCG, UCA, UCU, UCC, AGU, AGC)중 2개(UCG, UCA)를 다른 코돈(AGU, AGC)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아미노산의 합성을 멈추는 종결코돈 3개(UAG, UAA, UGA) 중 1개(UAG) 역시 다른 코돈(UAA)으로 바꿨습니다. 그러고 난 뒤 코돈 UCG, UCA에 결합해 세린을 전달해주던 tRNA와 UAG에 붙어 아미노산 합성을 중단시키는 방출인자를 제거했습니다.

즉, UCG, UCA, UAG 등 세 개의 코돈을 ‘리셋’ 시킨 것입니다. 리셋된 세 개의 코돈은 ‘인공 아미노산(ncAAs·noncanonical amino acid)’을 코딩할 수 있게 됐습니다.연구진은 크리스퍼를 이용해 UCG, UCA, UAG를 원하는 위치에 끼워넣은 뒤, 각각의 코돈과 인공 아미노산을 연결해줄 tRNA 유전자를 삽입했습니다. DNA가 단백질로 번역되기까지 필요한 요소인 코돈, 아미노산, tRNA가 모두 갖춰진 것입니다.

미생물 이용해 약물 생산하는 바이오텍에 유용한 기술 될 것
이렇게 연구진에 의해 재프로그래밍된 대장균은 바이러스의 감염에 매우 강했습니다. 2013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사이언스>에 유전 코드를 변경해 인공 아미노산을 삽입하는 경우,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이 강해질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요. 당시에는 아이디어에서 그쳤지만, 약 8년이 지난 지금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연구진은 인공 아미노산이 들어간 대장균에서는 바이러스가 제대로 번식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할 때 숙주의 단백질을 이용하는데, 숙주인 대장균의 일부 단백질에는 인공 아미노산이 끼어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죠. 바이러스가 자신의 단백질을 만들 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인공 아미노산이 포함된 바이러스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바이러스는 단백질을 합성할 때 아미노산 중 세린을 특히 더 많이 필요로 합니다. 기존에 세린을 코딩하던 6개의 코돈 중 3분의 1은 인공 아미노산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단백질의 생산량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 것이죠.

이렇게 바이러스 감염에 강한 미생물은 의약품을 생산해내는 데 아주 적합합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으로 많이 알려진 mRNA 백신의 경우 대장균과 같은 미생물 배양 방식으로 생산해내는데요. 의약품을 생산하는 미생물이 바이러스에라도 감염되면 약물 생산이 모두 중단되기 때문에, 감염에 대한 저항성은 생산 능력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신약 업계에서 재프로그래밍 대장균이 가지는 더 큰 의미는 필요한 인공 아미노산을 삽입함으로써, 원하는 약물을 쉽게 생산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약물의 생산 공정이 많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화학적으로 생산이 어려운 약물도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이나 구조가 아주 복잡한 약물이 그렇죠.인공생물학자인 아비세크 차터치(Abhishek Chatterjee) 미국 보스턴칼리지 교수는 이번 연구를 “잠재적인 신약의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지금은 3개의 아미노산만 바꿨을 뿐이지만 더 많은 중복 코돈을 원하는 인공 아미노산과 연결시킬 수 있고, 원하는 곳에 배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차터치 교수는 “미생물을 이용해 의약품을 비롯해 유용한 화합물을 생산하는 바이오텍에 아주 유용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