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고수 열전] 글로벌 임상경험 갖춘 바이오 심사역,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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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B네트워크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크로스보더 벤처캐피털(VC)이다. 다국적 제약사에서 근무하며 해외 임상시험을 경험한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는 국경을 넘나드는 바이오섹터 투자 전문가로 손꼽힌다.지난 6월 18일 중국 세포치료제 업체 카스젠테라퓨틱스(CARsgen Therapeutics)가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시가총액은 2조7209억 원으로 공모를 통해 4586억 원을 조달했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었다.하지만 KTB네트워크는 2016년 일찌감치 이 회사의 시리즈B 투자에 참여해 이번 기업공개(IPO)로 투자금 회수 기회를 잡았다. KTB네트워크는 단순 투자뿐 아니라 해당 라운드의 리드 투자사 역할을 도맡았다. 5년여 동안 이 기업의 가치가 가파르게 오른 덕분에 KTB네트워크는 상당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시 투자를 주도한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는 “제가 믿는 ‘3가지 투자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회사라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KTB네트워크의 바이오섹터 심사역이다.
투자 기업을 고르는 3가지 조건
서울대 약대에서 석사를 마친 천 이사는 2014년 KTB네트워크에 입사하며 투자업계에 뛰어들었다. 투자업계에 오기 이전까진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다. 종근당 연구원을 거쳐 일본계 글로벌 제약사 다이이찌산쿄에서 글로벌 임상을 도맡았다. 천 이사는 “글로벌 임상 현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비상장 바이오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천 이사가 꼽는 투자 기준 3가지는 균형 잡힌 창업 멤버의 구성, 최고 경영진의 현장 경험, 우수한 중개연구 능력이다. 중개연구란 전임상이 가능한 수준까지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연구를 뜻한다.
지난 6월 홍콩 증시에 상장한 카스젠은 그의 설명처럼 3가지 조건에 잘 맞아떨어진 기업이었다. 천 이사는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인 종하이 리(Zonghai Li) 교수는 키메릭 항원수용체 T세포(CAR-T)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자이면서도 특이하게 유전차 치료제 회사를 다니며 신약을 개발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자로서의 실력뿐 아니라 현장 실무 경험도 챙겼다는 뜻이다.
또 그는 “창업 멤버 중 회계사가 포함돼 있는 등 코어 멤버 구성 간 균형감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균형 잡힌 멤버 구성에 현장 실무 경험이 더해지면서 후보물질 이전 수준의 물질을 후보물질로 끌어올리는 중개연구 역량도 충분하다고 봤다.카스젠은 카이트파마, 주노테라퓨틱스 등 미국의 CAR-T 개발업체가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을 보고 천 이사가 직접 물색해 찾아낸 기업이다.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CAR-T를 개발하고 있다는 자그마한 외신 뉴스를 본 것을 시작으로 설립자가 낸 논문 10년 치를 훑어봤다. 고형암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 시험에서 완전관해(KR)를 확인했다는 결과가 천 이사를 사로잡았다. 천 이사는 “임상 경험으로 미뤄보아도 대단한 결과였다”며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연이 닿았다”고 말했다.
그 뒤로는 1년 동안 수십 번씩 중국에 있는 업체를 방문하며 꽌시(系·인맥문화)를 풀었다. 시리즈B는 물론 시리즈C까지 투자하게 된 건 그 다음일이었다. 일라이릴리의 아시아 벤처캐피털인 릴리아시아벤처스, 중국 최대 VC 중 한 곳인 힐하우스캐피털도 시리즈C 투자에 합류했다. 천 이사는 “카스젠에 투자한 이력 덕분에 이후 중국 및 아시아에 있는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수술로봇 업체 오리스헬스(Auris Health) 또한 천 이사가 강조하는 3가지 조건에 잘 부합하는 기업이다. 그는 KTB네트워크에 합류한 첫해 이 회사에 투자했다. 수술로봇 기업인 오리스헬스의 창업자 프레데릭 몰 박사는 인투이티브서지컬의 설립자였다. 인투이티브서지컬은 오늘날 의료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수술로봇 다빈치를 만드는 곳이다. 천 이사는 학술적으로는 물론 시장 경험도 풍부하다고 몰 박사를 평가했다.천 이사는 “수술로봇이라는 시장 자체가 없던 시절에 수술로봇이란 개념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라며 “한국에서 크로스보더 투자팀을 꾸려 시리즈C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후 오리스헬스는 존슨앤드존슨에 인수되며 KTB네트워크도 회수 기회를 잡았다.
3가지 조건 외에도 천 이사는 업계의 트렌드, 경영진과 투자자 사이의 투명한 소통능력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가령 셀리드는 천 이사가 보기에 항암제 개발의 글로벌 트렌드를 발 빠르게 쫓는 기업이었다. 그는 “다이이찌산쿄에서 근무하던 시절 항암제의 개발 트렌드가 표적항암제에서 면역항암제로 옮겨가더라”며 “항암백신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 최신 트렌드에 잘 맞아 투자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한 기업 중 한 곳인 브릿지바이오를 투명한 소통능력과 선진화된 의사결정 방식이 매력적인 기업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정규 대표가 LG화학을 거쳐 다양한 바이오 신약 벤처기업 창업 경험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천 이사는 “연구개발 및 회사 현황을 투자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물론 투자자로 구성된 이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은 흡사 나스닥 기업을 보는 것처럼 선진화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브릿지바이오는 2019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바이오 기업은 VC가 키운다
천 이사는 석사과정 중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교내 진로탐색 프로그램 중 그를 만나며 벤처투자업계에 입문하겠다고 결심했다. 입문에 앞서 국내 및 글로벌 제약사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것도 황 대표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황 대표와 그가 이끄는 한국투자파트너스의 성향은 ‘적극밀착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황 대표는 흔히 “자고로 기업에 투자한 VC라면 그 기업의 숟가락 개수까지 빠짐없이 다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임금으로 기업의 컨설팅을 도맡아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투자한 기업의 동반자로서 밀착관리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천 이사의 생각 또한 황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천 이사는 “기업을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대한 열쇠를 VC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연구원 중심으로 운영되던 신약 벤처기업이 임상에 나선다거나 할 땐 임상 전문인력을 추천할 수 있어야 하고, 해외 진출을 노릴 땐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천 이사는 “소규모 벤처기업일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다 보니 가능한 부분을 VC가 돕는 게 서로 윈윈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중 KTB네트워크가 강점을 가진 부분은 글로벌한 네트워크다. 천 이사는 “크로스보더 딜에 특화된 VC이다 보니 해외 기업이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구할 때 국내 CRO를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반대로 국내 신약 벤처기업이 해외 임상을 진행하려하면 적합한 해외 CRO와 연결해주는 등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투자한 업체가 빠른 영장류 임상을 원한다면 보유 네트워크를 십분활용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고 싼 비임상 CRO를 제공해주는 것도 우리 같은 VC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
당시 투자를 주도한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는 “제가 믿는 ‘3가지 투자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회사라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KTB네트워크의 바이오섹터 심사역이다.
투자 기업을 고르는 3가지 조건
서울대 약대에서 석사를 마친 천 이사는 2014년 KTB네트워크에 입사하며 투자업계에 뛰어들었다. 투자업계에 오기 이전까진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다. 종근당 연구원을 거쳐 일본계 글로벌 제약사 다이이찌산쿄에서 글로벌 임상을 도맡았다. 천 이사는 “글로벌 임상 현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비상장 바이오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천 이사가 꼽는 투자 기준 3가지는 균형 잡힌 창업 멤버의 구성, 최고 경영진의 현장 경험, 우수한 중개연구 능력이다. 중개연구란 전임상이 가능한 수준까지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연구를 뜻한다.
지난 6월 홍콩 증시에 상장한 카스젠은 그의 설명처럼 3가지 조건에 잘 맞아떨어진 기업이었다. 천 이사는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인 종하이 리(Zonghai Li) 교수는 키메릭 항원수용체 T세포(CAR-T)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자이면서도 특이하게 유전차 치료제 회사를 다니며 신약을 개발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자로서의 실력뿐 아니라 현장 실무 경험도 챙겼다는 뜻이다.
또 그는 “창업 멤버 중 회계사가 포함돼 있는 등 코어 멤버 구성 간 균형감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균형 잡힌 멤버 구성에 현장 실무 경험이 더해지면서 후보물질 이전 수준의 물질을 후보물질로 끌어올리는 중개연구 역량도 충분하다고 봤다.카스젠은 카이트파마, 주노테라퓨틱스 등 미국의 CAR-T 개발업체가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을 보고 천 이사가 직접 물색해 찾아낸 기업이다.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하는 CAR-T를 개발하고 있다는 자그마한 외신 뉴스를 본 것을 시작으로 설립자가 낸 논문 10년 치를 훑어봤다. 고형암 동물모델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 시험에서 완전관해(KR)를 확인했다는 결과가 천 이사를 사로잡았다. 천 이사는 “임상 경험으로 미뤄보아도 대단한 결과였다”며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가까스로 연이 닿았다”고 말했다.
그 뒤로는 1년 동안 수십 번씩 중국에 있는 업체를 방문하며 꽌시(系·인맥문화)를 풀었다. 시리즈B는 물론 시리즈C까지 투자하게 된 건 그 다음일이었다. 일라이릴리의 아시아 벤처캐피털인 릴리아시아벤처스, 중국 최대 VC 중 한 곳인 힐하우스캐피털도 시리즈C 투자에 합류했다. 천 이사는 “카스젠에 투자한 이력 덕분에 이후 중국 및 아시아에 있는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수술로봇 업체 오리스헬스(Auris Health) 또한 천 이사가 강조하는 3가지 조건에 잘 부합하는 기업이다. 그는 KTB네트워크에 합류한 첫해 이 회사에 투자했다. 수술로봇 기업인 오리스헬스의 창업자 프레데릭 몰 박사는 인투이티브서지컬의 설립자였다. 인투이티브서지컬은 오늘날 의료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수술로봇 다빈치를 만드는 곳이다. 천 이사는 학술적으로는 물론 시장 경험도 풍부하다고 몰 박사를 평가했다.천 이사는 “수술로봇이라는 시장 자체가 없던 시절에 수술로봇이란 개념을 내놓은 것도 모자라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개척한 인물”이라며 “한국에서 크로스보더 투자팀을 꾸려 시리즈C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후 오리스헬스는 존슨앤드존슨에 인수되며 KTB네트워크도 회수 기회를 잡았다.
3가지 조건 외에도 천 이사는 업계의 트렌드, 경영진과 투자자 사이의 투명한 소통능력이 중요하다고 꼽았다. 가령 셀리드는 천 이사가 보기에 항암제 개발의 글로벌 트렌드를 발 빠르게 쫓는 기업이었다. 그는 “다이이찌산쿄에서 근무하던 시절 항암제의 개발 트렌드가 표적항암제에서 면역항암제로 옮겨가더라”며 “항암백신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 최신 트렌드에 잘 맞아 투자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한 기업 중 한 곳인 브릿지바이오를 투명한 소통능력과 선진화된 의사결정 방식이 매력적인 기업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정규 대표가 LG화학을 거쳐 다양한 바이오 신약 벤처기업 창업 경험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천 이사는 “연구개발 및 회사 현황을 투자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물론 투자자로 구성된 이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은 흡사 나스닥 기업을 보는 것처럼 선진화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브릿지바이오는 2019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바이오 기업은 VC가 키운다
천 이사는 석사과정 중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교내 진로탐색 프로그램 중 그를 만나며 벤처투자업계에 입문하겠다고 결심했다. 입문에 앞서 국내 및 글로벌 제약사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것도 황 대표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황 대표와 그가 이끄는 한국투자파트너스의 성향은 ‘적극밀착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황 대표는 흔히 “자고로 기업에 투자한 VC라면 그 기업의 숟가락 개수까지 빠짐없이 다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임금으로 기업의 컨설팅을 도맡아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투자한 기업의 동반자로서 밀착관리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천 이사의 생각 또한 황 대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천 이사는 “기업을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대한 열쇠를 VC가 쥐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연구원 중심으로 운영되던 신약 벤처기업이 임상에 나선다거나 할 땐 임상 전문인력을 추천할 수 있어야 하고, 해외 진출을 노릴 땐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천 이사는 “소규모 벤처기업일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다 보니 가능한 부분을 VC가 돕는 게 서로 윈윈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중 KTB네트워크가 강점을 가진 부분은 글로벌한 네트워크다. 천 이사는 “크로스보더 딜에 특화된 VC이다 보니 해외 기업이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구할 때 국내 CRO를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반대로 국내 신약 벤처기업이 해외 임상을 진행하려하면 적합한 해외 CRO와 연결해주는 등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투자한 업체가 빠른 영장류 임상을 원한다면 보유 네트워크를 십분활용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고 싼 비임상 CRO를 제공해주는 것도 우리 같은 VC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우상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