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part.1] RAS가 ‘Druggable’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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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S가 속해 있는 RAS 유전자군은 암을 일으키는 변이 유전자 중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다. RAS 단백질은 세포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신호전달경로를 활성화시킨다. RAS는 GTP가 결합하면서 활성화되는데,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GTP를 분리하지 못한다. 계속 ‘오프(off)’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망가진 스위치가 되는 셈이다.
KRAS의 희망이 된 ‘소토라십’
주요 발암 원인 RAS는 40여 년간 연구자들의 주요 타깃이 됐지만, 약물 개발은 번번이 실패했다. RAS 단백질이 너무 ‘매끈’한 탓이다. 약물이 단백질 활성을 억제하려면 결합하는 부위, 즉 포켓이 있어야 하는데 RAS는 눈에 띄는 포켓이 없다. 실패를 거듭하던 중 2013년 케반 쇼캇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KRAS G12C에서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시스테인 잔기와 결합 시 새롭게 발생하는 포켓을 발견했다. 이후 KRAS를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약물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KRAS G12C 억제제의 선두 주자였던 암젠의 ‘소토라십(제품명 루마크라스)’은 지난 5월 2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 KRAS 저해제로는 최초다. 소토라십은 쇼캇 교수가 찾아낸 KRAS G12C 포켓을 이용하는 공유결합 억제제(covalent inhibitor)다. 그 뒤를 바짝 쫓는 것은 미라티테라퓨틱스의 ‘아다그라십’이다. 소토라십과 같은 기전의 KRAS G12C 억제제다. 아다그라십은 비소세포폐암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올해 상반기 FDA에 신약허가 신청을 제출할 예정이다.
RAS 간접적으로 저해할 수 있는 우회전략 구사 가능
소토라십이 KRAS의 ‘druggable’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KRAS 돌연변이 중 G12C가 차지하는 비율은 14% 정도다. 코돈 12번 자리의 글리신이 아스파라긴산(D)으로 바뀐 G12D(41%), 발린으로 바뀐 G12V(27%) 등의 변이가 더 흔하다. G12D와 G12V에는 아쉽게도 G12C와 같이 약물이 공유결합으로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 시스테인 잔기가 없다. 즉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신약 개발사들은 소토라십과 같은 RAS 직접 저해제가 아닌 간접 저해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RAS 단백질은 다단계 신호전달경로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그만큼 경로에 관여하는 단백질이 많다. 간접 저해제의 타깃이 많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던 타깃은 ‘파르네실 전달효소’였다. RAS가 GTP와 결합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세포막 근처에 달라붙어야 한다. 여기에 관여하는 효소가 파르네실 전달효소다. RAS에는 KRAS, NRAS, HRAS 등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과학자들은 비교적 구조가 간단한 HRAS로 연구를 시작했다. HRAS에서 파르네실 전달효소 저해제(FTI)는 매우 성공적인 약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연구를 통해 KRAS와 NRAS에서는 또 다른 효소를 이용해 FTI를 대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업계는 ‘스위치’에 주목했다. RAS 단백질이 결합하는 GDP가 GTP로 변하는 것을 막는 약물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RAS-GDP가 RAS-GTP로 되기 위해서는 SOS, SHP2 등 여러 효소가 필요하다. 이런 효소를 저해하면 RAS 신호전달을 간접적으로 막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베링거인겔하임의 ‘BI-1701963(SOS 억제제)’, 레볼루션메디슨의 ‘RMC-4550(SHP2 억제제)’ 등이 대표적이다. RAS 타깃 약물의 트렌드 ‘병용요법’… 임상 60% 차지
하지만 저분자 억제제의 허들은 ‘친화성’이다. 정상 단백질보다 돌연변이 단백질과 친화성이 훨씬 커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정상 단백질과 결합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약물의 활성이 떨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RAS 단백질은 GTP와의 친화성이 매우 높다. 이런 허들 때문에 단독제제로 임상을 수행한 다수의 파이프라인이 임상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런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기업들이 선택한 전략은 ‘병용요법’이다. 현재 임상에 진입한 RAS 타깃의 파이프라인 중 60% 이상이 병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 BI-1701963은 GSK의 트라메티닙과의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트라메티닙은 RAS에 의해 활성화되는 신호전달 경로(MAPK)에 관여하는 MEK 억제제로, 흑색종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노바티스의 SHP2 억제제인 ‘TNO155’ 역시 자사의 스파탈리주맙, 리보시클립 등과 병용요법 임상 1b상을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독제제는 만들기 어렵고, 간접적으로 저해할 수 있는 타깃이 많은 RAS 단백질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병용요법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
KRAS의 희망이 된 ‘소토라십’
주요 발암 원인 RAS는 40여 년간 연구자들의 주요 타깃이 됐지만, 약물 개발은 번번이 실패했다. RAS 단백질이 너무 ‘매끈’한 탓이다. 약물이 단백질 활성을 억제하려면 결합하는 부위, 즉 포켓이 있어야 하는데 RAS는 눈에 띄는 포켓이 없다. 실패를 거듭하던 중 2013년 케반 쇼캇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KRAS G12C에서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시스테인 잔기와 결합 시 새롭게 발생하는 포켓을 발견했다. 이후 KRAS를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약물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KRAS G12C 억제제의 선두 주자였던 암젠의 ‘소토라십(제품명 루마크라스)’은 지난 5월 2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 KRAS 저해제로는 최초다. 소토라십은 쇼캇 교수가 찾아낸 KRAS G12C 포켓을 이용하는 공유결합 억제제(covalent inhibitor)다. 그 뒤를 바짝 쫓는 것은 미라티테라퓨틱스의 ‘아다그라십’이다. 소토라십과 같은 기전의 KRAS G12C 억제제다. 아다그라십은 비소세포폐암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올해 상반기 FDA에 신약허가 신청을 제출할 예정이다.
RAS 간접적으로 저해할 수 있는 우회전략 구사 가능
소토라십이 KRAS의 ‘druggable’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KRAS 돌연변이 중 G12C가 차지하는 비율은 14% 정도다. 코돈 12번 자리의 글리신이 아스파라긴산(D)으로 바뀐 G12D(41%), 발린으로 바뀐 G12V(27%) 등의 변이가 더 흔하다. G12D와 G12V에는 아쉽게도 G12C와 같이 약물이 공유결합으로 강하게 결합할 수 있는 시스테인 잔기가 없다. 즉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신약 개발사들은 소토라십과 같은 RAS 직접 저해제가 아닌 간접 저해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RAS 단백질은 다단계 신호전달경로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그만큼 경로에 관여하는 단백질이 많다. 간접 저해제의 타깃이 많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던 타깃은 ‘파르네실 전달효소’였다. RAS가 GTP와 결합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세포막 근처에 달라붙어야 한다. 여기에 관여하는 효소가 파르네실 전달효소다. RAS에는 KRAS, NRAS, HRAS 등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과학자들은 비교적 구조가 간단한 HRAS로 연구를 시작했다. HRAS에서 파르네실 전달효소 저해제(FTI)는 매우 성공적인 약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연구를 통해 KRAS와 NRAS에서는 또 다른 효소를 이용해 FTI를 대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업계는 ‘스위치’에 주목했다. RAS 단백질이 결합하는 GDP가 GTP로 변하는 것을 막는 약물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RAS-GDP가 RAS-GTP로 되기 위해서는 SOS, SHP2 등 여러 효소가 필요하다. 이런 효소를 저해하면 RAS 신호전달을 간접적으로 막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베링거인겔하임의 ‘BI-1701963(SOS 억제제)’, 레볼루션메디슨의 ‘RMC-4550(SHP2 억제제)’ 등이 대표적이다. RAS 타깃 약물의 트렌드 ‘병용요법’… 임상 60% 차지
하지만 저분자 억제제의 허들은 ‘친화성’이다. 정상 단백질보다 돌연변이 단백질과 친화성이 훨씬 커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정상 단백질과 결합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약물의 활성이 떨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RAS 단백질은 GTP와의 친화성이 매우 높다. 이런 허들 때문에 단독제제로 임상을 수행한 다수의 파이프라인이 임상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런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기업들이 선택한 전략은 ‘병용요법’이다. 현재 임상에 진입한 RAS 타깃의 파이프라인 중 60% 이상이 병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 BI-1701963은 GSK의 트라메티닙과의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트라메티닙은 RAS에 의해 활성화되는 신호전달 경로(MAPK)에 관여하는 MEK 억제제로, 흑색종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노바티스의 SHP2 억제제인 ‘TNO155’ 역시 자사의 스파탈리주맙, 리보시클립 등과 병용요법 임상 1b상을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독제제는 만들기 어렵고, 간접적으로 저해할 수 있는 타깃이 많은 RAS 단백질의 특징을 고려했을 때 병용요법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2021년 7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