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직장 내 히잡 금지'에 적법 판결…무슬림 즉각 반발

유럽사법재판소 "고용주가 중립 표현 필요시 금지 가능"
2017년 판결 연장선…시민사회 "무슬림 여성 억압 우려"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이 아동 돌봄 센터, 의약품 소매점 등에서 직원에게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로이터 통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유럽사법재판소(ECJ)는 15일(현지시간) 고용주가 특정한 환경에 있는 사업장에서 필요에 따라 히잡 착용을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용주가 고객에게 중립적 이미지를 주고, 사회적 분쟁을 막을 필요가 있을 때는 일터에서 정치적, 종교적, 사상적 신념의 시각적 표현을 금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수년 전부터 직장 내 히잡 착용 금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도 되는지, 아니면 고객에게 중립적 분위기를 주려는 고용주의 필요에 따라 금지해도 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번 판결은 독일에서 일하는 무슬림 여성 2명에 대해 이뤄졌다.

이들은 각각 특수 아동 돌봄 센터 직원과 의약품 소매점 계산원으로, 일터에서 히잡 착용을 계속할 경우 해고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두 여성은 최초 고용될 때 히잡을 쓰지 않았지만, 육아 휴직에서 복직한 뒤 히잡을 착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ECJ는 2017년 3월에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당시에도 재판부는 특정한 일터에서 히잡 등 종교적 상징물로 인식될 수 있는 의복 착용을 금지한 규정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또, 기독교인에게도 십자가 목걸이 착용을 금지하는 등 여타 종교에 동시에 적용될 경우 직접적 차별의 소지도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유럽 무슬림 사회 등에서 즉각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EU 무슬림 네트워크'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유럽에서 이슬람 혐오주의가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이는 무슬림 여성 근로자를 겨냥한 공격일뿐만 아니라 이들의 종교적 표현을 억압하는 최근 유럽의 경향을 확인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저명한 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가 후원하는 오픈소사이어티 재단 측은 "수많은 무슬림 여성과 다른 종교 소수 집단을 계속 배제하는 판결이 나와 우려가 된다"면서 "고용주가 꼭 종교적 복장을 제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차별이 될 수 있기에 그들이 반드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종차별 반대 유럽 네트워크'도 "종교 상징을 금지하는 회사 정책이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인종이나 성별에 따른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텔레그래프는 "이번 판결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EU 27개국 재판부에 일터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줬다"고 평가했다.

히잡 등 종교적 상징물 착용을 제한하는 정도는 유럽 국가마다 다르다.

대표적으로 공적 영역과 종교를 분리하는 정책을 취하는 유럽 국가인 프랑스에서는 이미 2004년부터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상징물 착용을 금지했다. 이어 2014년 직장에서 히잡을 쓴 어린이 보육시설 종사자의 해고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