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연의 딜 막전막후] 3주 만에 팔린 51년 기업 한샘

김채연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한샘 인테리어 매장
“대한민국에 한샘을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요. 이 같은 사실과 인테리어 시장 성장성만으로 그 가격이 충분히 된다고 본 겁니다.” (투자은행업계 관계자)

조(兆) 단위 기업 매물이 제대로 된 실사도 없이 3주 만에 팔렸다. 실사 결과에 따라 가격이 수백억~수천억원 조정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수합병(M&A) 시장에선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그만큼 팔고 싶었던 측에서 급했고, 사고 싶은 측에서도 남들한테 뺏기기 싫었다는 얘기다. 지난주 주인이 바뀐 국내 1위 가구업체 한샘 얘기다.

한샘의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이 경영권 매각을 고려한 것은 벌써 수년 전이다. 조 명예회장은 1970년 한샘을 세운 뒤 경영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다가 1994년 물러났다. 이후 한샘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됐다. 조 명예회장은 슬하에 1남 3녀를 뒀지만 외아들이 2012년 사망하면서 가업을 물려줄 후계자가 없어 고심해 왔다. 세 자매는 물론 사위도 경영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 매입 주저…깜짝 후보 등장

한샘은 2017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 2조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사내 성추문, 불법 채용 등 각종 구설에 오르며 위기를 맞았다. 실적도 크게 고꾸라졌다. 2017년 1400억원에 달하던 영업이익은 1년 만에 560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조 명예회장은 결국 2019년 매각에 나섰다. 당시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과 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막바지에 무산됐다.매각 작업이 다시 본격화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조 명예회장은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콕 라이프’가 일상화하면서 가구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늘어 한샘 실적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하면서다. 한샘은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 931억원을 달성했다. 조 명예회장은 먼저 신세계 등 국내 유통 대기업 등과 두루 접촉했다. 그러나 가격 등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주당 20만원 이상 수준을 제시했으나 후보자들은 손사래를 쳤다. 한샘은 그러자 사모펀드(PEF)로 방향을 틀었다.

몇몇 PEF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사이 뒤늦게 뛰어든 깜짝 후보가 가격을 전격 수용했다. IMM 프라이빗에쿼티(PE)였다. 양측이 합의한 주당 거래 금액은 22만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IMM PE는 한샘이 50여 년에 걸쳐 쌓아온 브랜드 경쟁력과 인테리어 시장의 성장성만 봐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가격을 깎겠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곳이 가로챌까 봐 더 걱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인테리어 시장 성장세…가치 충분"

첫 만남으로부터 3주 뒤인 지난 15일 IMM PE는 조 명예회장 지분 15.45%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 약 30.21%를 인수하기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IB업계에선 거래 금액이 적정한 수준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샘은 자사주 26.7%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와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고려하면 인수가는 주당 18만원 안팎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IMM PE는 앞으로 상세실사,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거쳐 10월께 최종 거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가구 인테리어를 비롯한 건자재 업체 등 관련 업계에서는 이미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재택근무 보편화 등으로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인테리어업계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영역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홈코노미(home+economy)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현대 리바트는 ‘디자인 퍼스트’를 내세워 프리미엄 전략으로 차별화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LG하우시스는 ‘LX하우시스’로 이름을 바꿔 달고 인테리어 ‘지인’ 브랜드를 통해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여기에 오늘의집, 하우저 등 온라인 기반 인테리어 플랫폼도 공격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IMM PE도 한샘을 온·오프라인 통합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1년 뒤 판도가 어떻게 재편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