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 옆 연꽃정원 쉬엄쉬엄 걷다보니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도네

강릉 경포가시연습지·순포습지 여행
선교장
강릉의 하늘이 쪽빛으로 빛난다. 선교장 주변에는 탐스러운 연꽃과 능소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고, 경포 가시연습지에는 가시연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코로나19가 무겁게 세상을 짓눌러도 계절은 어김없이 빛나고 이 모든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꽃들의 화려한 미소를 보면서 우울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 보면 어떨까.

선교장,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인 선교장은 강릉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예전에 경포호는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선교장 인근까지 이르렀다. 선교장이 있는 마을까지는 배를 타고 건너다녀야 했기에 배다리(船橋里)라는 이름이 붙었다. 선교장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집주인은 세종대왕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다. ‘조선시대 한양 밖에서는 가장 큰 한옥’으로 불릴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처음부터 이런 규모는 아니었다. 1700년대 이내번이 지은 안채로 시작해서 대를 이어 점차 증축했다고 한다.

선교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활래정을 만나게 된다. 1816년 건립한 활래정은 온돌방과 누마루로 구성된다. 반은 땅 위에, 반은 연못 위에 있는 ㄱ자형 구조다. 전면이 돌출된 누마루를 연못에 설치한 돌기둥이 받치는 형태다.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풍경은 고혹적이다. 연꽃이 만발하는 여름날이면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활래정에서 내다보는 정취 또한 훌륭하다. 벽 없이 사방을 창호로 두른 덕분에 문만 열면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관람객은 내부 출입을 할 수 없으나 창호를 열어둬 밖에서나마 그 운치를 엿볼 수 있다.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보러 온 유람객들이 종종 선교장에서 묵어갔다. 활래정 월하문 주련에는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鳥宿池邊樹 僧鼓月下門)’이라고 적혔는데,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 객승은 달밤에 문을 두드리네’라는 뜻이다. 늦은 밤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이곳 문을 두드리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선교장에 묵은 손님들이 보답으로 남긴 시와 서화를 활래정뿐 아니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가 남긴 현판 ‘홍엽산거(紅葉山居)’는 선교장박물관에 전시 중이다.선교장의 사랑채인 열화당에도 손님들의 특별한 선물이 남아 있다. 열화당에서는 전통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차양이 눈에 띈다. 선교장에 머무른 러시아 공사가 환대에 대한 답례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여름 꽃놀이 명소 경포가시연습지

선교장 인근 경포가시연습지도 여름 꽃놀이 명소다. 경포호 주변 습지를 복원한 뒤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인 가시연이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경포가시연습지
가시연은 풀 전체에 가시가 있고, 꽃은 일반 연꽃보다 짙은 자줏빛을 띤다. 흔히 볼 수 없어 더 특별한 꽃구경이다. 경포호와 경포습지 사이 산책로를 따라가면 가시연 발원지에 이른다. 나룻배 체험장, 연꽃정원으로 산책을 이어가며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드넓은 연밭 사이로 데크 산책로를 조성한 연꽃정원에서 꽃길을 걸으며 인생 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경포가시연습지 연꽃정원에서 산책로를 따라가면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에 이른다. 조선 중기 대표 여성 시인 허난설헌과 그의 동생이자 《홍길동전》을 쓴 허균을 기리는 공원이다.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지는 강릉 초당동 고택(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9호)과 허균·허난설헌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허균·허난설헌기념관 등이 있다. 야외에는 허난설헌 동상과 허씨5문장 비석이 있고, 주변에 솔숲이 우거져 산책하기 좋다.

경포가시연습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순포습지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순포습지는 대략 4만~5000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호가 있었던 곳이다. 석호는 만의 입구를 모래둑(사취)이 막아서 생긴 작은 호수로 다양한 생물을 키워내는 자연생태계의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다. 예전에 순포습지는 면적이 매우 넓었으나 현재는 자연적인 매립과 더불어 근처 농경지를 개간하며 습지 면적이 급속히 줄었다. 심각성을 깨달은 강릉시가 2011년부터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했다. 이곳의 순채 서식지도 복원했다. 순채는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순포라는 지명 유래와 관계가 깊다. 순채가 많이 자라는 지역이라 하여 이 일대를 순포라고 불렀다.

습지를 따라 탐방로도 조성했다. 순포습지는 경포가시연습지에 비해 사람이 적어 한적하게 자연을 감상하기 좋다. 해당화, 애기부들, 어리연 등 계절별로 다양한 꽃과 식물이 함께한다. 습지에 찾아오는 새를 살펴볼 수 있도록 조류관찰대도 마련했다.
강문해변
순포습지 근처의 강문해변은 경포해변보다 한산한 편이었는데, 포토존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사람이 늘었다. 해변을 따라 전망 좋은 카페와 음식점도 많다. 강문해변과 경포해변을 잇는 아치형 인도교 강문솟대다리가 명물이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이 다리를 빛낸다.

여행코스 제안

당일 여행

강릉 선교장→경포가시연습지→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강문해변→순포습지

1박2일 여행

● 첫째 날

강릉 선교장→경포가시연습지→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강문해변→순포습지

● 둘째 날

영진해변→주문진수산시장→아들바위공원→BTS버스정류장(방탄소년단 앨범 재킷 사진 촬영지)

여행 정보

숙소는 강릉 오죽한옥마을과 Y&G비즈니스호텔&펜션, 수호텔 등이 깔끔하다. 오월에초당의 소고기 멸치국수, 밥은먹고다디냐의 꼬막밥, 카페 폴앤메리의 수제 버거가 맛있다. 선교장 주변에는 강릉오죽헌 경포해변, 경포대,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경포아쿠아리움, 강릉솔향수목원, 안목해변 등이 있다. 같이 둘러보기 좋은 곳들이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