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놓고 野 투톱 '딴소리' [좌동욱 국회 반장의 현장 돋보기]

사실상 국민의힘에 달린 전국민 재난지원금
논란 석달 째인데 당내 논의는 전무…이준석·김기현은 딴소리
제도 개혁할 절호의 기회 “소득 기준 파악·국가재정법 바꿔야”

수권정당의 모습 보여주지 못하면, 정권교체도 어려워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오늘부터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본격 심의합니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따른 소상공인 피해지원, 소비진작을 위한 재난지원금 등 민생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총규모만 33조 원에 달합니다.

통상은 추경은 정부와 여당의 몫입니다. 172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추경안을 단독으로 의결할 능력도 갖췄습니다. 웬일인지 이번 추경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102석 소수 야당인 국민의힘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정권 말 독특한 당·정·청 역학관계때문입니다. 핵심 사안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입니다.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기획재정부)는 전 국민의 80%에 1인당 25만 원을 현금성 자산으로 나눠주는 재난지원금(8조4000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여기에 신용카드를 전 분기보다 많이 쓰면 최대 30만 원을 돌려주는 상생소비 지원금(1조1000억 원)을 보탰습니다.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20%의 중·고소득층을 달래기 위한 방책입니다.

최근 민주당은 신용카드 캐시백의 실효성 논란이 일자, 이 정책을 포기하고 재난지원금 대상을 80%에서 100%로 확대하는 안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소득 하위 80%의 국민은 재난지원금을 받는데, 80.1%는 받을 수 없는 부작용도 우려했습니다. 재난지원금의 지급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분명한 소득 기준이 마땅치 않은 점도 고려했다고 합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런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완강히 반대하자,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끌어들이려 합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여야 정치권이 재난지원금 대상 확대에 합의하면 홍남기 부총리도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 깔려있습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지난 15일 국회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요청해오면 (정부는)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키’를 쥐게 된, 이례적인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의 80%에 주느냐, 100%에 주느냐는 약 1000만명(전 국민의 20%)의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입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약 2조5000억 원 정도입니다. 신용카드 캐시백(1조1000억원)을 철회하면 1조4000억 원의 재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번 전체 추경 예산(33조 원)의 4%정도입니다.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지원 규모가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3조5000억 원 가량 증액된 것에 비춰보면 그렇게 어렵다고 볼 문제는 아닙니다. 고용 조기회복 지원(1조1000억 원), 청년 희망사다리 패키지(1조8000억 원) 등 내년 본예산에 반영시킬 수 있는 정책들도 있습니다.

조금 실망스러운 건 야당의 자세입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두텁게 지원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는 공식 입장(전주혜 대변인)에서 한 발 더 나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추경안 심사 4대 원칙’을 밝히면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습니다. 하루 전날 “재원이 남으면 검토할 수 있다”는 이준석 당 대표의 발언과 거리가 있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사석에선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완고한 입장을 밝힌다고 합니다. 정치권에선 제1야당의 ‘투톱’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가 이 문제를 놓고 속내를 터놓고 토론을 했다는 얘기도 없습니다. 여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정책 의총을 열어 격론을 벌이면서 의견을 수렴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사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저소득층에 대해 선별 지급한다’는 보수 정당의 핵심가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책입니다. 하지만 헌법에 따라 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갖고, 여당이 과반 이상 의석을 가진 현실 정치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소수 야당이 전 국민의 민생 정책의 키를 쥘 수 있게 된 절호의 찬스에서 당 지도부에선 “전국민의 80%에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도 반대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먼저 이견을 해소하라”는 수세적 입장도 아쉽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정당이 과연 국민들에게 수권 정당으로서 비쳐질까요? 국민의힘 내부에선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평소에 이 문제를 제대로 심도있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논의에 불지피기 시작한 게 벌써 석달 전 일입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그 흔한 태스크포스팀도 가동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추경 제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 재정정책과 복지정책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이유에서입니다. 1년 6개월이 넘는 기간 100조 원이 넘는 혈세를 추가로 뿌리면서 아직까지도 소득 파악 기준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부의 씀씀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국가재정법 개정 논의도 흐지부지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에 질색한 국민들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권 정당을 원합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번 대선 경선에서도 제대로 된 수권 능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권 교체의 꿈을 요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