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반도체 기업 목줄 잡은 ASML…5년 새 매출 두 배로

ASML 주가 10년 새 35.5달러에서 684달러로 수직상승
첨단 반도체 제조 위해선 ASML의 EUV 장비 필수로 갖춰야
EUV 생산하는 기업은 ASML이 유일
한 대당 가격 최대 3000억원 까지
슈퍼을이라고 불리기도
네덜란드 펠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 전경. ASML 제공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인 ASML의 주가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는 ASML은 19일 684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올해 초 500달러 수준에 비해 37% 가량 가격이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20일 발표될 ASML 2분기 실적도 사상 최대 기록을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SML의 주가가 이처럼 강세를 보이는 것은 전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는 선폭 10㎚(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EUV 장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EUV를 생산하는 곳은 전세계에서 ASML 한곳 뿐이다.

미국, EUV 활용해 중국 반도체굴기 제압

2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네덜란드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자국 기업 ASML의 대중국 수출 허가를 보류하고 있다. 타깃은 ASML의 주력 생산품인 EUV 장비다.

EUV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활용된다. 회로를 새기는 광원의 파장이 기존 장비와 비교해 14분의 1 수준으로 얇다. 그만큼 회로를 세밀하게 그릴 수 있다. 회로선폭이 얇아지면 웨이퍼 한 판 안에서 나오는 칩 수가 기존보다 많아진다. 선폭이 좁을수록 작고 전력 효율성이 높은 반도체를 만들 수도 있다. 고성능의 반도체를 웨이퍼에서 더 많이 건져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반도제 차급률을 올리기 위해선 EUV 장비가 필요하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디스플레이 패널 등의 두께가 갈수록 얇아지는 대신 처리해야 할 데이터 양은 많아지면서 미세공정으로 생산된 최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 통제로 EUV 장비를 수입할 수 없게 된 중국은 첨단 반도체 생산이 사실상 중단됐다. 중국 반도체 기업 SMIC는 10㎚미만 첨단반도체 제조를 할 수 없게 됐다. 하이실리콘은 기린AP 생산을 중단했다.


EUV 한대 가격 최대 3000억원까지 치솟아

네덜란드 펠트호번에 있는 ASML 본사 내 클린룸. ASML제공.
대만 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이 다른 반도체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것도 EUV 장비를 다수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만들지 못하는 고사양의 최첨단 칩을 EUV 장비 덕에 생산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10나노급 4세대(1a) 미세공정을 적용한 8Gbit(기가비트) LPDDR4 모바일 D램 양산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EUV 공정을 적용한 덕분이다. 최첨단 반도체 제조를 위해선 EUV 장비를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한 대당 가격이 2000억~3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비싸 반도체 기업들도 쉽사리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간 기술 격차가 EUV 장비 때문에 더 벌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UV 장비는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ASML도 1년에 30~40대 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ASML주가, 10년 새 35.5달러에서 684달러로

미세공정이 반도체 기술 대세가 되면서 ASML 시장점유율도 90%에 육박하고 있다. 매출도 급성장했다. ASML의 매출은 2016년 68억 유로(약 9조 2100억원)에서 지난해 140억 유로(약 19조원)로 두배 이상 늘었다. 시가총액은 2850억 달러(약 328조원) 수준이다.

10년간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2011년 7월 19일 35.5달러였던 ASML주가는 19일 종가 기준 684달러로 20배 가까이 급등했다. 삼성전자는 ASML의 시장가치를 내다보고 2012년 ASML 지분 3%를 363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현재는 1.5%에 해당하는 629만7787주를 갖고 있다. 이 지분가치만 해도 4조 9000여억원이다. ASML이 기술집약적인 반도체부품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협력기업들과의 강력한 제휴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SML은 1984년 네덜란드 전자업체 ‘필립스’와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ASM인터내셔널’의 합작벤처로 탄생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설때까지도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까지만해도 반도체 광학장비 시장에선 일본의 캐논과 니콘이 선도기업이었다.

하지만 2003년 ASML이 액침(이멀전) 방식의 노광장비를 출시하면서 세계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특히 ASML은 독일 광학 업체인 자이스와의 협력으로도 유명하다. 자이스는 노광장비 내에 들어가는 반사거울을 만든다. EUV 장비의 광원인 극자외선을 웨이퍼에 새기기 위해선 반사거울이 반드시 필요하다. ASML이 수퍼‘을’이라면 자이스는 수퍼‘병’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자이스를 협력업체로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력이 있어도 EUV 장비를 만들지 못한다”며 “ASML이 2016년 자이스의 반도체 사업부문 지분 24.9%를 10억유로(약 1조3300억원)에 산 것도 자이스와의 강력한 협력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