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원자력 한 우물 팠는데…탈원전으로 '적폐'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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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4년…인력 생태계가 무너진다“12년 전 처음 원자력을 공부할 때는 국가의 산업 근간을 이끌 수 있다는 자부심과 꿈을 갖고 있었어요. 요즘엔 ‘적폐’소리를 듣는 처지네요.”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 재학생인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꿈과 자부심이 한 순간에 무너져내렸다”며 이 같이 말했다. 2009년 KAIST에 입학한 그는 같은 학과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따고 현재 박사 과정까지 원자력 한 우물만 파온 청년이다.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을 뒷받침해온 원전 ‘인력 생택계’가 무너지고 있다. 원전 관련 학과는 대학 신입생들의 기피 학과로 전락했고, 이미 원자력을 전공한 학생들은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를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조 대표는 “탈원전으로 원전 분야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함께 원자력을 공부하던 박사 선배들이 대부분 전공을 살리지 못한 채 ‘비(非) 원전’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지난 4월 작성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출한 원자력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은 지난해 3월 기준 2190명으로, 2017년 8월(2777명)에 비해 21.1% 감소했다. 학부생과 석사, 박사, 석·박사 통합과정생을 모두 합한 수치다. 특히 학사 과정 재학생은 같은 기간 2019명에서 1566명으로 22.4% 감소했다.
2018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한 나호정 씨(29)는 원자력을 전공하고도 원자력 분야로 진출하지 않은 청년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나씨는 “대학을 졸업할 시기가 다가왔을 때 탈원전 정책이 가속화하면서 원전 분야 일자리는 사실상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고 했다.
정부는 나씨와 같은 청년들에게 “원전 관련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가 육성하고 있는 원전 해체 분야에도 원자력 전공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씨는 “원전 해체는 원자력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내가 그렸던 미래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공을 살리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일찌감치 다른 진로를 선택한 나씨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사례다. 경남 창원의 원전 설비 중견업체에 엔지니어로 취업했던 A씨(36)는 2019년 실직자가 됐다. 이후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A씨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잘못된 국가 정책이 한순간에 개인의 미래를 나락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