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분양가 싸다"…무주택 15년 버텼다가 청약한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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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외곽 취급받던 처인구 집값 상승"4년 전에 입주할 때만 하더라도 친구들이 말렸죠. 동네도 휑하고 미분양인데 왜 들어가냐구요. 이제는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랐어요. 뭐라고 했던 친구들은 무주택으로 청약통장을 여기저기 넣고 있더라구요."
아파트값 7억 근접…호가 8억까지 치솟아
외곽에서 '청약 인기지역'으로 탈바꿈
"청약 가점 높아도 분양가에 처인구로 밀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살고 있는 서모씨는 최근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무주택자인 친구들은 망설이다가 집값이 너무 올라 집 사는 시기를 놓쳤고, 뒤늦게 청약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단독주택에서 역북동 아파트로 이사했던 4년 전을 후회하지 않게 됐다.
"수지·기흥구 너무 올랐다"…처인구 집값도 들썩
용인의 변두리 정도로 여겨졌던 처인구 집값이 고공행진이다. 2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처인구 역북지구 일대의 아파트들은 3.3㎡당 2000만원을 넘어섰다. '우미센트럴파크'와 '역북 지웰푸르지오' 전용 84㎡의 최고 실거래가는 각각 6억8400만원(5월), 6억7500만원(7월)을 기록했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1억원 이상, 분양가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지역 공인중개사에 나와있는 매물의 최고가는 8억원에 이른다. 역북동 A공인중개사는 "기흥구 동백지구나 강남마을 보다도 집값이 높다"며 "예전의 처인구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러한 처인구의 집값 상승은 주변지역 집값과 전셋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수지구와 기흥구의 집값이 급등하면서 무주택자들을 중심으로 처인구 매수가 이어졌다. 전용 84㎡ 기준으로 수지구에서는 대장 아파트들이 15억원 안팎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고, 기흥구에서는 10억원을 훌쩍 넘었다. 처인구도 뒤늦게 집값 상승 대열에 합류하면서 속속 5억원 허들을 넘고 있다. 경기도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상반기 용인시의 아파트 거래량은 6734건으로 지난해 1만3438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수지구(5367→2234건)와 기흥구(6178→2973건) 또한 절반 이상 급감했지만, 처인구는 1527건으로 지난해 상반기(1893건)에 비해 20% 줄어드는 데 그쳤다. 거래시장이 아직은 살아있어 매수자들이 활발히 유입되고 있다는 게 현지에서의 설명이다.
3개구로 구성된 용인시는 수지구와 기흥구에 인구가 밀집한 편이다. 처인구는 농촌으로 인식됐던 지역인데,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에서 포항 북구 다음으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넓다. 서울보다 충북과 가까울 정도로 경기 남부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야외 놀이시설인 에버랜드가 자리한 곳도 처인구다.
"분양가 1000만원대 아직 있다…고점 통장 쏠려"
농촌과 한가함의 대명사였던 처인구는 이제 내 집 마련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분양가가 3.3㎡당 1000만~1300만원대에 불과한데다, 용인에서 유일하게 조정대상지역으로 대출이나 청약 면에서 문턱이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용인경전철을 이용해 분당선 기흥역 환승을 통해 출퇴근을 하거나, 영동고속도로 용인IC나 42번 국도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용인신갈IC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내년부터는 제2경부고속도로 안성~구리 구간,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이천~오산(동탄) 구간 등이 개통될 예정이어서 추가 교통망도 누릴 수 있게 된다.22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이 처인구 고림진덕지구 D1블록과 D2블록에 공급했던 '힐스테이트 용인 고진역'(2703가구)의 전용 84㎡의 최고 당첨가점은 74점이었다. 분양가가 (최고가 기준) 4억1540만원인 아파트다. 이 밖에 분양가가 2억 후반~3억원대인 전용 59㎡A형과 70㎡에서는 4인 가족의 최고점인 69점이 최고점으로 등장했다. 69점과 74점은 4~5인 가족이 무주택으로 15년 이상, 청약통장 가입 15년 이상을 버텨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역북동에서 지역주택조합으로 일반분양을 했던 '용인 명지대역 서희스타힐스 포레스트'의 경우 1순위에서 23가구를 모집하는데 871명이 몰렸다. 평균경쟁률 37.8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전용 59㎡의 분양가는 3억1000만~3억2000만원이고, 84㎡의 분양가는 4억4000만~4억5000만원대였다. 주변 시세보다 낮은 건 물론이고 초기 조합원들의 입주권과 비교하면 1억원 이상이 오른 수준이다. 지난 3월 김량장동 용인8구역주택재개발을 통해 공급된 '용인 드마크 데시앙' 또한 1순위에서 통장 최고가점이 74점에 이르기도 했다. 1308가구에서 1069가구를 일반분양했던 이 아파트는 분양이 완전히 끝난 상태다. 전용 84㎡의 분양가는 4억2000만원대였다. 경기 남부권에서 규제가 없는 지역은 이천과 여주 정도다. 경강선이 지나는 여주역 부근의 아파트 분양권 호가는 전용 84㎡가 5억원을 넘었다. 용인과 가까운 광주에서도 광주역 인근 아파트 시세가 7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주변지역 집값이 치솟으면서 뒤늦게라도 통장을 쓰려는 수요들이 몰리고 있다.
청약 전문가들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 아무리 고가점자들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가격' 문제로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규제로 묶이다보니 예비청약자들은 '가격'을 놓고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경기 남부권에서 화성 동탄2신도시나 평택의 집값도 워낙 높아, 그나마 가까운 용인 처인구에 청약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