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문명의 추진 동력 '보상 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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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고통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관심사다. 고대 바빌론의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현대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사상에 이르는 수많은 인문학적 논의에서 이를 다룬다. 쾌락주의(Hedonism)자들은 쾌락을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자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쾌락이란 식욕과 성욕의 충족 등 감각적 즐거움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에서 누리는 휴식, 예술과 스포츠 등 취미 활동, 지식 습득, 목표 달성 등 모든 종류의 즐거운 경험을 포괄한다. 또한 종교는 인간을 고통에서 구하고 행복의 길로 인도함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이렇듯 쾌락에 대한 다양한 인문학적 논의가 있지만, 이 모든 쾌락이 같은 개념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현대 뇌과학은 어떻게 풀고 있을까? 여러 연구 결과는 쾌락이 공통적으로 뇌의 ‘보상 회로(reward pathway)’ 기능과 밀접함을 밝히고 있다. 보상 회로는 중뇌, 변연계 등 여러 뇌 영역에 산재하는 신경 핵과 이들 간의 연결 통로로 이뤄진다. 특히 긍정 및 부정적 자극에 대한 정보처리에 관여하며 여러 인지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쾌락처럼 긍정적 정서의 발현(좋아함) △긍정적 정서를 유도하는 자극이나 대상을 취하는 행동(원함, 동기 부여) △사물, 사건 간 연관성 학습(파블로프 조건화 학습, 작업 학습)이 일어난다.
보상 회로가 작동을 멈추면 쾌락 추구 행동이 없어지는 ‘무쾌감증(anhedonia·안헤도니아)’이 나타난다. 좋아하던 초콜릿에 무관심해지는 행동 증상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초콜릿의 맛은 느껴도 손을 뻗어 입에 넣을 의욕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동기 부여 기능이 가라앉은 경우다. 이를 통해 보상 회로는 ‘좋아함’과 ‘원함’의 두 가지 속성을 함께 조절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신분열증,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에게서 보상 회로 기능 저하가 많이 발견된다.
보상 회로는 생존을 위해서 생겨났다. 단세포 동물이 다세포 동물로 진화하면서 뇌가 발달했다. 수많은 복잡한 세포들로 구성된 몸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정상 작동하려면 뇌의 조절 기능이 필수적이다. 전체 세포들이 질서 정연하게 기능해야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향하여 움직일 것인가? 음식 섭취, 짝짓기, 생존에 필요한 경험 획득 등이 보편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즉, 가능한 한 쾌락은 많고 고통은 적을수록 최상의 선택이다. 요컨대 보상 회로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뇌의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보상 회로의 과도한 작동은 양면성이 있다. 마약, 알코올, 도박 중독은 물론, 일 중독도 보상 회로 과작동의 결과다. 무엇인가에 미치면 다른 것에는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옷을 고르는 시간마저 줄이려고 늘 청바지와 검정 티셔츠만 입던 고(故)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 예다. 인류 역사에는 잡스처럼 무엇인가에 미쳐서 열중했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적 성과를 내놨다. 이렇게 보면 현대 인류 문명은 보상 회로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현대 뇌과학은 어떻게 풀고 있을까? 여러 연구 결과는 쾌락이 공통적으로 뇌의 ‘보상 회로(reward pathway)’ 기능과 밀접함을 밝히고 있다. 보상 회로는 중뇌, 변연계 등 여러 뇌 영역에 산재하는 신경 핵과 이들 간의 연결 통로로 이뤄진다. 특히 긍정 및 부정적 자극에 대한 정보처리에 관여하며 여러 인지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쾌락처럼 긍정적 정서의 발현(좋아함) △긍정적 정서를 유도하는 자극이나 대상을 취하는 행동(원함, 동기 부여) △사물, 사건 간 연관성 학습(파블로프 조건화 학습, 작업 학습)이 일어난다.
현대 뇌과학은 '쾌락'을 어떻게 볼까
보상 회로의 핵들(중격의지핵, NAc 등)은 쾌락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그래서 쾌락 중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음식, 섹스 등의 자극에 의한 보상 회로 활성화는 쾌락 감정을 일으켜 그 대상을 취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보상에 관한 인지 행동은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상은 크게 내재적 보상과 외재적 보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음식과 섹스처럼 그 자체가 쾌락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경우다. 후자는 돈이나 명예처럼 연관 학습을 거쳐 내재적 보상으로 연결돼 쾌락을 유도한다. 또한 보상 회로는 타인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에도 활성화된다. 가령 시기하던 상대가 불운을 맞아 몰락했을 때 느끼는 기쁨(schadenfreude·샤덴프로이데)이 있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전통적인 훈련 방법은 연관 학습에서 보상 회로의 역할을 잘 이용한 기법이다.보상 회로가 작동을 멈추면 쾌락 추구 행동이 없어지는 ‘무쾌감증(anhedonia·안헤도니아)’이 나타난다. 좋아하던 초콜릿에 무관심해지는 행동 증상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초콜릿의 맛은 느껴도 손을 뻗어 입에 넣을 의욕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동기 부여 기능이 가라앉은 경우다. 이를 통해 보상 회로는 ‘좋아함’과 ‘원함’의 두 가지 속성을 함께 조절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신분열증,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에게서 보상 회로 기능 저하가 많이 발견된다.
잡스처럼 '일 중독'이 현대문명 이뤄
반면 보상 회로가 비정상적으로 과작동하는 경우를 중독(탐닉)이라고 한다. 마약, 술 등 ‘좋아함’을 자극하는 약물에 장기간 노출되면 보상 회로의 ‘원함’ 통로의 기능이 강화된다. 중독은 한 번 빠지면 해당 자극에만 몰두해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는 쥐 실험에서 극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쥐의 보상 회로 한 곳에 전극을 심고 전선을 외부 손잡이에 연결한다. 이때 쥐가 손잡이를 누르면 그 보상 회로에 전기 자극을 주게 만든다. 그러면 쥐는 손잡이를 한 시간에 수천 번까지도 누른다.보상 회로는 생존을 위해서 생겨났다. 단세포 동물이 다세포 동물로 진화하면서 뇌가 발달했다. 수많은 복잡한 세포들로 구성된 몸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정상 작동하려면 뇌의 조절 기능이 필수적이다. 전체 세포들이 질서 정연하게 기능해야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향하여 움직일 것인가? 음식 섭취, 짝짓기, 생존에 필요한 경험 획득 등이 보편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즉, 가능한 한 쾌락은 많고 고통은 적을수록 최상의 선택이다. 요컨대 보상 회로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뇌의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보상 회로의 과도한 작동은 양면성이 있다. 마약, 알코올, 도박 중독은 물론, 일 중독도 보상 회로 과작동의 결과다. 무엇인가에 미치면 다른 것에는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매일 아침 옷을 고르는 시간마저 줄이려고 늘 청바지와 검정 티셔츠만 입던 고(故)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 예다. 인류 역사에는 잡스처럼 무엇인가에 미쳐서 열중했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적 성과를 내놨다. 이렇게 보면 현대 인류 문명은 보상 회로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