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마음을 얻는 법

이런저런 생각

큰 바다 파도는 얕고
사람 한 치 마음은 깊네
바다는 마르면 바닥을 드러내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 알 수가 없네* 두순학(杜荀鶴, 846~907) : 당나라 시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당나라 시인 두순학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습니다. 마흔여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진사가 되었지요. 아마도 그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큰 바다 파도’와 ‘한 치 사람 마음’을 대비시킨 이 시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 속은 참 알 수가 없지요.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첨단 과학으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여론조사나 소비자 분석 적중률이 90%에 이른다지만, 10%의 오차 때문에 뜻밖의 결과가 나오곤 하지요.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 확신을 갖고 기대했다가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 당혹해하는 일도 많습니다.

‘칵테일파티 효과’와 마음의 비밀

아주 시끄러운 술자리에서 누군가 자기 이름을 입에 올리면 금방 알아챕니다. 혼잡한 거리를 걷다가도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즉각 고개를 돌립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야 할 곳의 안내방송이 나오면 잠에서 번쩍 깨기도 하죠.

심리학자들은 이런 일을 ‘칵테일파티 효과’로 설명합니다. ‘칵테일파티 효과’란 왁자지껄한 파티장 소음처럼 수많은 잡음 속에서도 관심 있는 소리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하지요. 그런데 이것이 ‘확증편향’과 겹쳐지면 우리 눈을 멀게 합니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리한 정보만 모으는 게 확증편향이잖아요.

주식을 산 사람은 값이 오르길 바라는 마음에서 ‘상승 요인’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주식을 팔고 싶을 땐 매수 시점을 찾기 위해 ‘하락 요인’에만 매달립니다. ‘1등 당첨 복권 나온 집’이란 현수막이 걸린 가게만 골라 복권을 사는 심리, 똑같은 돈이라도 ‘공돈’이 더 쉽게 주머니에서 나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 마음은 이처럼 비이성적인 요인에 자주 휘둘립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사람 마음’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변덕스러운 마음의 결을 잘 읽어내면 그게 바로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위해 ‘쓰기’ 9%, ‘읽기’ 16%, ‘말하기’ 30%, ‘듣기’ 45%의 비율로 시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사람 속을 알기 위해서는 ‘듣기’를 가장 많이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죠.

단순히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마음을 얻으려면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력과 공감력을 갖고, 귓바퀴를 오므리듯 진심으로 말을 들어주는 ‘경청’이야말로 마음을 얻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포로에게도 귀를 연 칭기즈칸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칭기즈칸은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경청을 통해 지혜를 얻었습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과 교감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늘 귀를 열고 누구 말이든 주의깊게 들었습니다.

그는 ‘적게 말하라’와 ‘듣지 않고는 결정하지 마라’를 생활 철칙으로 삼고, 소소한 결정에도 참모들의 의견을 구했지요. 심지어 포로로 잡혀 온 적에게도 귀를 열어 정보를 얻고 생사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다고 합니다.

일본경제신문에서 잘나가는 영업사원들의 영업화술을 조사한 결과 ‘무조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응답이 1위로 나타났습니다. 상대에게 더 많이 말하게 할수록,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길수록 상대의 마음이 잘 열린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원칙을 잘 지킨 칭기즈칸은 자기 뜻을 관철하기 전에 마음과 귀를 열고 상대의 속을 먼저 들여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건 ‘될성부른 나무’,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지요.

칭기즈칸보다 300여 년 전에 태어난 시인 두순학은 인재를 몰라주는 세상에 가려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자기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떡잎’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그늘에서 시들었을까 하고 안타까워했지요. 그가 남긴 또 다른 시 ‘어린 소나무(小松)’에 그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뾰족뾰족 풀숲에서 고개 들더니/ 어느새 덤불 헤치고 솟아오르네/ 사람들은 장차 구름 위로 솟을 그 나무 몰라보고/ 구름 위로 솟은 뒤에야 그 나무 높다 하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