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등급 조정 리스크…산재·불공정거래행위가 주요인

국내 대표적인 ESG 평가기관들은 정기 평가 외에 분기 또는 반기마다 중대 이슈를 반영해 평가 기업의 ESG 등급을 조정하고 있다. 특히 산업재해나 불공정행위가 빈번히 발생할 경우 등급 하락을 막기 어렵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지난 6월 24일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삼성웰스토리에 사내 급식 몰아준 삼성그룹 부당지원행위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대표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기관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서스틴베스트·대신경제연구소 세 곳이다. 이 중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분기별로, 서스틴베스트와 대신경제연구소는 반기별로 기업의 ESG 등급을 조정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는 지난 7월 100여 개 상장기업에 대한 등급 조정 결과와 기준을 나란히 공개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지만 평가 기준에 대해 따로 문의해 답변을 받았다. KCGI, 7월 16개 기업 등급 하향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확인된 ESG 위험을 반영, 7월에 3차 ESG등급위원회를 개최해 16개사의 ESG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공개한 쟁점 요인을 보면 빈번한 근로자 사망 사고 발생 이슈가 가장 눈에 띈다. 대우건설·현대제철·고려아연·한국조선해양 등이 이 같은 이슈로 등급이 강등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대외적으로 ESG 활동을 아무리 잘해도 산업재해 같은 중대 이슈가 발생할 경우 ESG 등급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

공정거래법 위반도 등급 하락의 주요인 중 하나다. 삼성전자와 삼성SDI·삼성전기, 아시아나와 에어부산·아시아나IDT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남양유업은 코로나19와 관련한 불공정 마케팅 및 광고, GS리테일은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 사항이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직원의 극단적 선택, 롯데케미칼은 반복적 대기오염 물질 불법 배출이 문제가 됐다. 김진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팀장은 "이번 분기에는 ESG 등급이 오른 기업이 한 곳도 없다"라고 밝혔다. 지난 1월의 1차 등급 조정과 4월의 2차 등급 조정 때도 주요 이슈는 산업재해와 공정거래 위반이었다. 포스코·CJ대한통운·LG디스플레이·동국제강·태영건설·한국조선해양 등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가 문제가 됐다. 이 외에 한온시스템·한화솔루션·효성·애경산업·한익스프레스·대웅제약·현대제철·화승알엔에이·DRB동일·SK텔레콤·SK네트웍스 등은 모두 공정위와 법원에서 선고된 불공정거래행위가 원인이 됐다.
서스틴베스트는 올 상반기부터 상장기업의 ESG 평가 결과를 반기 기준으로 처음 공개했다. 고은해 서스틴베스트 리서치팀 실장은 "2013년부터 반기마다 ESG 평가를 하고 있었지만 하반기에만 결과를 공개해왔는데 올해 처음으로 상반기에도 일부 결과를 공개했다"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는 포스코와 포스코케미칼 등이 잇따른 산업안전 관련 컨트러버시(controversy) 이슈로 등급이 하락했다. 서스틴베스트에 따르면 평가 기간 내 ESG 이슈와 관련한 논란 사안이 발생한 경우 그 영향의 심각성과 유사 사건의 재발 가능성을 평가해 '컨트러버시 레벨'을 부여한다. 이 경우 ESG 영역별 점수에서 레벨에 따른 점수가 차감된다. 일일 모니터링을 통해 주간 단위로 사건 사고의 심각성을 평가하고 이를 종합해 반기에 한 번 평가 결과를 보정한다. 산업재해와 공정거래 위반은 등급 조정의 주요 요인이다. 서스틴베스트는 지난해 공개한 상장기업 ESG 분석 보고서에서 '감시해야 할 기업 리스트(watchlist)'를 공개했다. CJ대한통운·GS건설·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근로자 사망 사고,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위반과 입찰 담합, 아시아나항공은 하도급 불공정거래행위와 항공기 정비 부실, 부당 지원 행위 등이 지적됐다. 영풍은 사업장 폐수 유출 사고와 불완전판매 등으로 워치리스트에 포함됐다.

사건·사고별 가중치 달라

대신경제연구소는 등급이 오른 기업과 내린 기업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ESG 등급을 투자자에게만 제공한다는 방침 때문이다. 다만 평가 기준의 경우 대신경제연구소도 컨트러버시 이슈가 발생하면 점수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평가에 반영한다. 특히 회계 위반, 산업 안전사고 발생, 불공정거래행위 등 중대 이슈가 발생한 경우 등급을 조정한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사건 사고의 빈도수도 고려하는데, 최근 3년간의 이슈를 시간 가중치를 달리해 반영한다. 이선경 대신경제연구소 ESG본부장은 "컨트러버셜 이슈에 대해 다른 평가기관보다 긴 시계열을 기준으로 다양한 이슈를 반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산업에 따라서도 사건·사고별 가중치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인터넷 산업은 정보보안, 개인정보보호 등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고, 석유화학이나 철강 등은 산업안전과 온실가스 배출량 등의 이슈 비중이 더 커진다.


[인터뷰] 김진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ESG평가팀 팀장

“논란성 이슈 점검해 등급 조정 판단”
김진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ESG평가팀 팀장.
김진성 팀장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평가팀을 총괄한다. ESG평가팀에서는 ESG 평가 모형과 모범 규준 개발, 가이드라인 제‧개정, ESG 등급 부여 및 조정 등 전반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이번 반기·분기 평가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매년 10월 정기 등급을 발표하고 있으며, 이후 정기 등급에 대한 조정을 차년도 1월·4월·7월에 실시하고 있다. 2021년 평가는 기존 모범 규준을 기반으로 한 평가의 마지막 해로, 지난해부터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ESG 경영에 대한 인식의 발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내년에는 곧 발표될 새로운 모범 규준에 기반한 평가 모형으로 바뀐다.”

- 논란성 이슈(controversy)에 대한 평가 반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논란성 이슈를 반영하기 위해 정기 평가에서 심화 평가(감점)를 도입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정기적으로 혹은 필요에 따라 논란성 이슈를 점검해 등급 조정 여부를 판단한다. 심화 평가에 기반을 두되 해당 이슈가 갖는 ESG 리스크 측면도 판단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기업의 등급을 정할 때 고려하는 기준이 있다면.

“개별 기업의 ESG 체계 및 제도, 관행 등에 기반해 점수를 도출한다. 이에 더해 논란성 이슈도 함께 점검하고 있다. KCGS 등급은 ESG 부문별로 각기 다른 등급 산정 기준(점수 구간)을 갖는다. 지배구조의 경우 A등급 이상이 예상되는 경우 인터뷰, 즉 정성 평가 절차를 거쳐 최종 등급을 정한다. ESG 통합 등급을 산출하는 경우에도 각 기업별로 ESG를 통합하는 가중치가 산업에 따라 다르다. KCGS 등급은 총 일곱 단계로 B+ 이상을 양호한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A등급 이상을 우수한 경우로 본다.”

- 기업 등급을 정할 때 특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평가하지만 기업의 피드백을 통해 이를 보완한다. 그럼에도 기업이 공개한 내용이 기업의 실질적 ESG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 다른 평가 기관과 비교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만의 차별점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비영리사단법인으로 평가 대상 기업으로부터 비용을 받지 않고, 유료 컨설팅도 하지 않는다. 가능한 선에서 무료 자문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상장기업의 ESG 관행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올바른 등급 평가를 위해 바꿔야 할 점이 있다면.“ESG와 관련한 보다 많은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이미 ESG와 관련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유럽에서도 ESG 정보 공개 의무화가 실시되고 있다. 정부와 관계 기관은 ESG 정보 공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기업에 보다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관련된 ESG 이슈를 선제적 파악하고 정보 공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