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사회적 기업 제품 구매가 '국민 의무'라는 법, 타당한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에 나섰다.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19대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던 법이다. ‘사회주의 경제법’이라는 거센 비판 속에 폐기된 것이 21대 국회에서 되살아났다. 국회에 발의된 5건 법안을 보면 이전에 나온 것보다 정부 지원 정도를 한층 높였다. 명분은 양극화 해소, 취약계층 지원, 사회적 가치의 실현 등이다. 이에 대한 반대론은 “공익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세제 혜택과 정부 보조금만 노리는 것”이라고 압축된다. 물론 이 법에 들어가는 ‘윤리적 소비’, 즉 ‘모든 국민은 윤리적인 소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도 쟁점이다. 윤리적 소비라는 게 경제에서 나오기 힘든 개념인 데다 헌법에 보장된 ‘소비자 주권’과도 충돌한다는 지적이다. 개별법인 농협법·수협법 등 기존 협동조합법과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현실론도 있다. ‘사회적 경제’라는 게 경제에 이념과 정치를 덧대는 것이어서 비효율만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건강한 공동체’ ‘격차 완화’를 내세운 입법 추진파는 시장과 민간에 대한 정부 개입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깊숙이 진행되는 이 시대에 지역공동체 개념도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법은 필요한가.

[찬성] 취약계층 지원 차원…지자체와 각 부처에만 맡겨선 곤란

취약계층 지원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다. 자유시장 원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양극화와 격차 해소에 정부가 법률을 동원해서라도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지금까지는 이런 노력이 지방자치단체 조례나 일시적 행정 차원에서 이뤄졌다. 종합지원센터까지 세운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이 그런 사례다. 또 비슷한 사업이 부처별로 나뉘어 있어 효과적이지 못했다. 협동조합 관련은 기획재정부, 사회적 기업 정책은 고용노동부, 마을기업 관련은 행정안전부, 자활기업 사업은 보건복지부가 맡아왔다. 서로 다른 근거법과 행정에 따르다 보니 부처별 이해관계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비효율로 이어졌다. 이제 이런 개별 정책을 하나로 묶어 체계적 정책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는 쪽으로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고용 없는 성장’도 그렇게 해결해나가야 한다. 지역 단위로 가면 전국 규모에서나 국제 기준에서 뒤처지는 곳이 많아 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

법이 제정되면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를 설치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행정 협조도 모색할 수 있다. 이런 데서 개별법과의 충돌 문제를 논의할 수 있고, 시장경제의 단점도 보완할 수 있다.

다만 과도한 의욕을 보여 사회적 경제의 범위를 너무 넓게 하기보다는 특정 틀 안에서 실천과제를 정하는 등으로 실효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영역에서 민간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도 피해갈 수 있다. 재정 투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는 물론 숙제로 남는다.국제기구 등에서도 사회적 경제의 가치에 주목한 적이 있다. 잘만 운영하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나친 경쟁에서 벗어나 협동이 중시되는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 법이 될 것이다. 이미 이런 법을 제정한 나라도 있다.

[반대] 공공 비효율과 무임승차 부채질 헌법의 '소비자 주권'과 배치돼

가뜩이나 심각한 공공의 비대화와 비효율 문제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법이다. 사회적 경제 조직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협동조합인데, 이들 중 많은 부분이 공익적 기능은 구호일 뿐이고 세금 감면 혜택과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협동조합이 7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밤잠 안 자고 제때 못 먹고, 때로는 생명 걸고 일하는 도전자를 거꾸로 차별할 수 있으며, 무임승차를 부채질하는 법이 될 것이다.

법의 개별 조항에서도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조항에서는 사회적 경제 조직체가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모든 국민은 윤리적인 소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비자 자유의지에 따라 구매하는 것이 시장의 기본원리 아닌가. 헌법이 규정한 소비자 주권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구매가 국민의 의무가 되면 반(反)헌법적이다. 일반 국민이 보통의 기업 제품을 사면 반윤리적 소비가 된다는 논리 아닌가.정부와 지자체가 연간 물품 구매액의 5~10%를 사회적 경제 조직의 제품을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10%면 5조7000억원에 달하는데,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는 내놓기만 하면 무조건 팔릴 상황이다. 소수의 종업원이 있는 사회적 기업에서 이런 수요를 제대로 대기 어렵고, 결국 정부 기관에 의존하는 종속적 사업체만 난립할 것이다. 그들이 국회의원, 시장·군수, 심지어 지방의회 의원 등 ‘힘깨나 쓰는’ 선출 공무원 눈치를 살피며 그 영향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그러는 사이 좀비기업을 살려두는 회색지대만 키울 수 있다. 선거 때마다 그런 기업이 늘어나고 누구도 간섭·감독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는 건 보나마나다. 나아가 그런 조직체를 키운다고 공적 자금으로 기금을 형성하고 기부를 강요하는 부작용까지 예상된다. 사회주의화된다. 실제로 그런 방향의 법조항이 있다.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길이다.

생각하기 - 소비에 윤리·비윤리 규정은 위험…정치 눈치보기도 우려

또 한 번 명분 취지와 현실 후과가 충돌하고 있다. 헌법의 정신과 취지대로 하면 하위 개별법은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해선 안 된다. 물론 격차 해소와 취약계층 지원 노력을 배제할 수도 없다. 협동조합법 등 흩어져 있는 법안을 재정비하는 노력을 먼저 기울이면서 ‘지금’ ‘독립된 새 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다. 선의와 의욕을 앞세운 나머지 법 내용에도 일부 문제 될 조항을 담고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의 상품 구매가 ‘국민 의무’라는 식은 곤란하다. 모든 국민이 자기 의지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헌법에 있는 소비자 주권이다. 정부나 지자체에 일정 부분 구매 비율을 정한다거나 구매 시 우대 정도로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전국에 2만7000개(2019년) 난립한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구조조정이나 자율적 옥석 가리기는 어렵기만 할 것이고, 선거라도 거치면 이 숫자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저급 행정이 난립을 키우고, 후진 정치가 사회적 경제 생태계의 꼭대기에 군림하며 모든 걸 좌우하는 상황까지 감안할 필요가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