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에 다 죽을 판" 힘겨운 여름나는 나주 오리농장

농장 올여름 전남 1만569만마리 가축 폐사…98%가 닭·오리
"더위를 견뎌야 하는 사람도, 오리도 죽을 맛이죠."
연일 폭염 경보가 이어진 23일 전남 나주시 세지면에서 오리 농장을 운영하는 임종근(54) 씨는 물 분사기가 뿌려지는 축사 입구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온도에 취약한 오리가 연일 이어지는 폭염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지난 겨울에는 조류인플루엔자로 예방적 살처분에 나선 방역 당국에 의해 애지중지 키우던 5만8천마리의 오리를 모두 잃어야 했던 임씨였다.

결국 상당한 빚을 지고 다시 오리를 키우기 시작한 임씨로선 이번 여름나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임씨의 농장은 폭염에 철저히 대비하고 나섰다.

뜨거운 외부 온도를 차단하고 시원한 바람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축사 입구엔 뿌연 안개처럼 이뤄진 물 분사기를 쉴 새 없이 돌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미세한 물 입자들이 피부에 닿을 때 느껴지는 상쾌함은 오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축사 안엔 천장 부근에 달린 대형 선풍기와 함께 열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교차한 천장이 설치돼 있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펄펄 끓은 외부와 비교해 축사 안은 비교적 시원했다.
그럼에도 오리들은 더위에 지쳐 찬 바닥에 앉아있거나 연신 물을 마시며 힘겨워했다. 임씨는 오리들이 마시는 물에 옅은 농도로 소금을 섞었다.

부족한 염분과 미네랄 등을 보충하고 오리들이 물을 더 자주 마시게 해 폐사율을 낮추는 그의 노하우였다.

철저하게 여름나기를 준비한 임씨지만 폭염이 계속 이어질 경우 폐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오리들은 한번 열사병이 걸리면 치료나 회복이 불가능해 그대로 죽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폭염이 계속되거나 더 심해지면 폐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임씨의 농장은 나은 편이었다.

시설과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거나 기온이 더 높은 지역에선 가축들의 폐사가 잇따랐다.

올여름 들어 전남에선 1만569만마리의 가축이 폐사했고 이 가운데 98%인 1만379마리가 닭과 오리 등 가금류로 조사됐다.

나주에서 양계장은 운영하는 60대 농장주는 "추위에는 방한막을 치거나 불을 지펴주는 등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게 있는데 더위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여름나기가 더 힘들다"며 "더우면 닭들도 지쳐 알 생산량이 줄고 크기도 작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마다 날씨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그저 무사히 여름을 날 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