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송금 '비싼 수수료' 뿔난 두 친구…'돈의 국경' 허물고 12兆 핀테크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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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와이즈 바람이 시작됐다.’
크리스토 카르만·타벳 힌리커스 와이즈 공동창업자
2011년 P2P 서비스社 창업
국제 송금 원하는 개인들 연결
실제로 돈이 국경 넘지 않고도
송금·환전되는 사업모델 구축
이달 7일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개인 간 거래(P2P) 국제송금 서비스업체 와이즈에 대한 외신과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평가다. 와이즈는 이날 주당 8파운드(약 1만2600원)에 거래를 시작해 10% 오른 8.8파운드에 장을 마쳤다. 와이즈의 시가총액은 80억파운드(약 12조6000억원)를 훌쩍 넘겼다.포스트 브렉시트(Post 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런던 자본시장이 와이즈의 성공으로 한숨 돌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올해 초 영국 배달 플랫폼 딜리버루와 캐나다 칩 제조사 알파웨이브 등이 런던증시에 상장했지만 초라한 주가 흐름을 보인 탓에 영국에서는 핀테크를 포함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런던행을 기피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로이터통신은 “와이즈의 성공적인 안착 덕분에 런던증시가 미국 뉴욕증시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증시만큼 IT 기업들을 수용해주지 않는다는 우려를 잠재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은행에 내는 수수료 아까워 창업
와이즈는 ‘환전업계의 로빈후드’로 불린다. 기존 은행들이 해외 이체 거래에 평균 5~10%의 수수료를 받아가는 데 비해 와이즈가 매기는 수수료는 1%가 채 안 되기 때문이다. 이 회사 플랫폼을 통한 국제송금 거래 규모가 작년 한 해에만 540억파운드(약 85조5000억원)를 웃돌았다.영국에 본사를 둔 와이즈는 에스토니아 출신 크리스토 카르만 최고경영자(CEO)와 타벳 힌리커스 회장이 2011년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다. 둘 다 30대 초반 나이였다. 카르만은 “창업 당시 우리는 은행에 갖다 바치는 수수료 때문에 입는 손실로 신물이 난 상태였다”고 말했다.카르만은 원래 영국 딜로이트 직원이었다. 고향에서 낸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파운드화로 받은 월급을 유로화로 환전해 다달이 에스토니아에 송금하고 있었다. 힌리커스는 반대 상황이었다. 그는 근무하던 스카이프로부터 유로화로 급여를 받았는데 런던에 거주하고 있어 파운드화가 필요했다. 두 사람은 매달 국제송금을 하면서 “은행에 상납하는 수수료가 너무 비싸고 그 체계도 불투명하다”는 불만을 지울 수 없었다.
친구 사이인 카르만과 힌리커스는 국제송금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영국과 에스토니아에 각각 계좌를 개설했다. 그리고 상대방 계좌에 서로 필요한 화폐를 이체했다. 카르만은 그의 영국 HSBC은행 계좌에 쌓아둔 파운드화를 힌리커스의 영국 로이드은행 계좌에 넣어주고, 힌리커스도 자신의 에스토니아 은행 계좌 속 유로화를 카르만의 에스토니아 은행 계좌로 이체했다.힌리커스는 “우리는 돈이 필요한 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비싼 수수료를 내가며 국제송금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떠올렸다. 두 사람의 아이디어는 스카이프 채팅을 통해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일종의 송금 클럽이 만들어졌다. 이 클럽이 2011년 설립된 와이즈의 모태가 됐다.
공유 서비스 열풍을 핀테크로
와이즈의 국제송금 서비스는 이렇게 P2P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제송금을 원하는 수많은 개인을 모아 연결해준다. 국제송금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 송금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구축했다. 같은 국가 안에서 이체 서비스가 이뤄지기 때문에 당연히 환전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카르만과 힌리커스는 와이즈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맥스 레프친 등으로부터 13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기 전 약 1년간은 직접 자금을 대면서 사업을 이어나가야 했다. 와이즈는 창업 첫해 국제송금 거래 규모가 855만파운드(약 135억원) 수준이었다. 이듬해인 2012년부터 IT 전문지 와이어드UK, 테크크런치 등이 ‘주목해야 할 스타트업’으로 꼽으며 회사가 빠르게 성장했다.페이팔의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이 설립한 벤처캐피털(VC) 발라르벤처스가 2013년 600만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틸은 “와이즈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국경을 넘어 부를 유지해주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와이즈의 사업은 파죽지세로 커나갔다.
2015년엔 미국 뉴욕에 진출하면서 ‘반항적인’ 홍보 캠페인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뉴욕 사무실을 개설한 날 200여 명의 직원이 전통금융의 상징인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속옷만 입은 모습으로 거리 행진을 벌인 것이다. 카르만은 “기존 금융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이 같은 이벤트를 했다”고 말했다.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던 때였다. 힌리커스는 “금융 분야에서도 공유경제의 일환인 P2P 서비스를 통해 혁신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르만과 힌리커스는 와이즈 상장으로 에스토니아 출신 첫 억만장자로 등극했다. 와이즈 최대주주로 지분 18.8%를 갖고 있는 카르만의 자산은 2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분 10.9%를 보유한 힌리커스 역시 11억달러 이상의 자산가가 됐다.덴마크 핀테크 기업 플레오 창업자인 제퍼 린돔은 최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와이즈는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경계에 도전하고, 제품이 아니라 문화에 투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