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VR로 우울증·치매 고친다…국산 '디지털 치료제' 속속 임상

와이브레인, 우울증 전자약 美 임상
뉴냅스는 VR로 시야장애 치료

"치매 등 희귀질환으로 범위 확장"
정부, 전자약 개발에 406억 투자
약을 먹지 않고도 스마트폰 앱과 전기 자극으로 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왔다. 전자약, 디지털 치료제로 대표되는 3세대 치료제로 임상을 하거나 상용화를 앞둔 국내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치매, 당뇨 등으로 치료 범위를 넓히면서 전통 제약산업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우울증 전자약, 3분기 국내 출시

와이브레인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전자약 마인드의 미국 임상을 연내 신청할 계획이다. 올 3분기엔 국내 시장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우울증 치료에 단독 요법으로 쓰는 전자약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획득했다. 임상에선 전자약 사용 6주 후 환자군의 57.4%에서 우울증이 정상으로 회복됐다. 단독 치료 방식으로 임상에 성공한 우울증 전자약으로는 세계 최초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전자약은 저분자 화합물(1세대), 바이오 의약품(2세대)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불린다. 미세한 전기 자극으로 뇌신경을 자극해 치료 효과를 낸다. 디지털 치료제도 3세대 치료제에 속한다. 디지털 치료제는 게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한다. 국내에선 상용화된 사례가 없다.

3세대 치료제 개발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페어테라퓨틱스는 알코올·약물 중독 치료제 리셋으로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세계 첫 디지털 치료제를 내놨다. 2018년 스마트폰 앱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치료하는 프리스피라, 지난해엔 게임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치료하는 인데버RX 등 미국산 디지털 치료제가 연이어 승인을 받았다. 시장조사업체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디지털 치료제 시장 규모는 올해 52억달러에서 2026년 96억4000만달러로 85% 성장할 전망이다.

“임상·IT 강점 살려 시장 선점해야”

국내에선 두 곳이 디지털 치료제 허가 임상 단계에 진입했다. 2019년 뉴냅스가 뇌졸중으로 생긴 시야 장애를 치료하는 뉴냅비전으로 국내 첫 임상 승인을 받았다. 게임처럼 구성된 VR 소프트웨어를 하루 30분씩 이용하도록 해 환자를 치료한다. 지난 4월엔 라이프시맨틱스가 호흡재활용 디지털 치료제인 레드필숨튼으로 허가 임상을 신청했다. 연내 임상 완료가 목표다. 빅씽크테라퓨틱스는 강박장애 치료제 오씨프리로 4월 미국 임상을 시작했다. KT도 지난달 신경정신질환 치료 전자약으로 FDA 승인을 받은 미국 뉴로시그마와 협약을 맺고 3세대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다.

정부는 전자약 기술개발사업에 내년부터 2026년까지 406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치매, 파킨슨병, 당뇨, 희귀질환 분야 전자약을 주로 지원한다. 디지털 치료제에선 정서 장애 및 자폐 치료에 350억원, 우울증 장애 치료에 289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과기정통부가 원천기술 개발을, 보건복지부가 제품 개발을 지원한다”며 “그간 기초과학 과제 단위로 수행하던 R&D 사업을 디지털 치료제, 전자약 등 산업 단위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3세대 치료제는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반호영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부회장은 “우수한 임상 인프라를 집적된 환경에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서 정보기술(IT) 인력이 풍부한 한국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며 “3세대 치료제 세계 시장의 강자가 아직 없어 국내 기업의 세계 시장 선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