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죽지 마라"…생사 오가는 아이를 안은 아버지의 절규 [김수현의 THE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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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10대에 '마왕' 작곡…괴테의 시에서 영감
'걸작' 진입장벽 높아…1인 4역 소화할 표현력 필요
작품 전반에 깔린 '공포'…코로나19 속 '죽음' 의미 대두
"아버지, 마왕이 저를 끌고 가려 해요. 마왕이 제게 상처를 입히고 있어요." -슈베르트 <마왕(Der Erlkonig)> 中 아들의 가사2019년 말 예고도 없이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를 기점으로 우리의 일상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마스크 착용은 생활 속 일부가 됐고 경제와 사회, 교육, 문화 등 전 영역에서의 개인과 공동체 활동이 무너졌죠. 사람 간 만남을 기피하면서 외로움과 우울감도 커진 탓에 '코로나 블루'라는 새로운 병명도 생겨났습니다.
훼손된 모든 가치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것이 있다면 이는 '가족의 소중함' 단 하나일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언제든지 나의 사랑하는 아이가, 하늘 같은 부모가 숨을 쉬기 어려울 수 있다는 두려움은 가족의 건강과 동태를 더욱더 세밀하게 살피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일상에 죽음이 드리우면서 가족의 가치는 그 어느 것보다 진귀해진 셈입니다. 생사를 오가는 어린 자식과 그를 살리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작품화한 슈베르트의 '마왕'을 이 시점에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누군가의 울음으로 치부되던 아픔이 이제 우리의 삶과 더는 무관치 않은 일이 되어버린 오늘, '마왕'이라는 작품이 전하는 울림은 이전과 다를 것입니다. 서늘한 분위기에 긴장감 넘치는 멜로디가 단순한 공포심을 넘어 우리의 마음을 아리도록 하는 음악, 슈베르트의 '마왕'을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죽음의 문턱…'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손에서 표현되다
먼저 '마왕'의 작곡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초기 독일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로, 베토벤과 모차르트 못지않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실제로 그는 11세에 빈 궁정 예배당의 합창 아동으로 채용된 뒤, 모차르트 세기의 경쟁자로 알려진 살리에리로부터 작곡법을 배우게 되죠. 이후 슈베르트는 불과 17세가 되던 1814년에 '물레 잣는 그레트헨' 등 성악곡을 작곡하고, 18세가 되던 해에 '들장미', '마왕'을 비롯한 140여곡의 가곡과 현악 4중주곡, 교향곡 등의 작품을 대거 발표하는 성과를 내게 됩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슈베르트는 당시 대중으로부터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슈베르트는 일평생 가난 속에서 허덕이다 31세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독신이었던 슈베르트는 마지막 순간에도 질병에 걸려 외롭게 생을 마감했죠. 끊임없는 작곡에도 자신의 피아노 한 대를 사기 어려웠고, 친구에게 하는 첫 인사가 "배가 고프다"였다는 일화는 그의 고달팠던 삶을 짐작하도록 합니다. 일각에서는 슈베르트가 평탄치 못한 일생을 지냈기에 빈 서민 생활의 감정을 작품에 충실히 반영하고, 독일 낭만파 음악의 토대인 성악곡 형식 '리트'의 핵심을 만들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불운했던 개인의 삶 자체와는 역설적이게도 말이죠.고유의 가치가 불변하듯, 슈베르트의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 피아노 5중주곡 '송어'는 물론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겨울 나그네', '아베마리아' 등 수많은 가곡은 세기의 대작으로 조명받죠. 특히 가곡 영역에서 슈베르트의 존재 가치는 어느 작곡가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는 31년이라는 짧은 생 속에서 600여편의 가곡을 쏟아낸 인물입니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다수의 작품을 작곡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간 주목되지 않았던 '가곡'이라는 영역을 음악의 주요 예술 형식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입니다.고전파 시대에서 가곡은 단순히 시의 내용을 잘 전달되도록 하는 부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슈베르트는 시를 해석하는 독자적인 영역으로서 가곡의 가치를 확대했습니다. 특히 피아노를 이용해 독일 대문호들이 쓴 서정시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내고자 했던 변화는 가곡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슈베르트에게 '가곡의 왕'이라는 칭호가 결코 아깝지 않은 이유입니다.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마왕'은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는 대표적인 가곡입니다. 작품의 영감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시였다고 하죠. 괴테는 '마왕이 아이를 죽음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내용의 덴마크 설화를 기반으로 시를 쓴 뒤 8권의 첫 공식 작품집을 출판합니다. 해당 시로부터 압도적인 매력을 느낀 슈베르트는 단 1시간 만에 '마왕' 작곡을 마쳤다고 하죠. 명성이 높은 가곡인 만큼 성악가라면 누구나 부르고 싶은 작품으로 꼽히지만, 진입장벽이 상당한 탓에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작품은 아닙니다. 우선 해설자와 아이, 아버지, 마왕 총 4명의 인물을 단 한명의 성악가가 완벽히 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음역은 물론 각 등장인물을 표현하는 음색에서도 차이가 뚜렷이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극적인 상황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지 등의 표현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평가될 수 있는 곡인 만큼 성악가의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200년 넘게 연주되는 마력의 작품 '마왕'.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와 그를 안고 말을 타는 아버지,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공포심를 키우는 마왕의 모습까지 머릿속에 두고 음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강렬한 말발굽 소리와 아이의 울부짖음…극단의 공포심 유발
'다그닥, 다그닥' 작품은 피아노 연주자의 강렬한 셋잇단음표 연타로 시작됩니다. 빠르게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곡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죠. 슈베르트는 악보에 'schnell(매우 급박하고 빠르게)'이라는 음악 용어를 직접 적어 원하는 작품의 분위기를 명확히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워낙 빠른 템포에 옥타브와 화음을 넘나드는 셋잇단음표 연타가 곡 전반에 깔리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자에게도 도전적인 곡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왼손으로 연주되는 멜로디 선율은 세찬 바람 소리를 나타내면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죠.이후 해설자가 아이를 품에 안은 아버지가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는 상황을 언급하면, 이내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망토와 왕관을 쓴 마왕이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아이의 두려움 섞인 울분에 아버지는 "네가 보는 형상은 안개란다", "네가 듣는 음성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란다"라고 소리치며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모든 언어를 동원합니다.그러나 아버지의 위로가 끝나기가 무섭게 마왕의 목소리가 흐르기 시작하죠. "사랑스런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처음에는 차분하고 달콤한 말로 아이를 유혹하던 마왕은 아이가 계속해서 아버지의 품에 파고들자 언성을 높이며 본색을 드러냅니다. 곡이 중반부에 치달으면서 마왕은 "만약 오기 싫다면 억지로라도 데려가야겠다"고 소리치면서 아이를 위협합니다. 이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절규하는 아이를 아버지는 더 꽉 껴안고 말을 몰아댑니다.작품이 진행될수록 공포에 질린 아이와 아이를 달래는 아버지, 폭력성을 앞세우는 마왕의 대립이 격화됩니다. 저음을 사용해 애써 침착하려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잔뜩 겁에 질려 떨리는 음색을 고음 영역에서 표현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교차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눈여겨볼 점은 마왕의 음성이 나타나는 부분에서 말발굽 소리가 사라진단 것입니다. 마왕이 아이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죠.
아버지의 계속되는 위로에도 아이는 결국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마지막 세마디에서 셋잇단음표는 자취를 감추고, 피아노 연주자가 강하게 2개의 화음을 연주하면서 작품은 막을 내리죠. 추가적인 설명은 없으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인 만큼 심장이 내려앉는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g단조의 어두운 음색으로 작품 내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슈베르트의 '마왕'. 가사의 내용과 곡의 표현력이 보다 극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만큼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클래식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죽음이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린 오늘, 음악이 주는 감정은 공포보다는 서글픈 마음으로 다가와 아프기만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전 세계에서 4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사망했고, 코로나19로 부모 등 양육자를 잃은 18세 미만의 '코로나 고아'는 약 156만명에 달합니다. 오늘만큼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아픈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돌아볼 수 있길.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한 가족과 이별한 이들에게 우리의 따뜻한 시선이 모아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