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金 싹쓸이 뒤엔 정의선의 '덕질' 있었다…2대째 뚝심 지원

현대차그룹, 양궁협회와 손잡고 5가지 기술 지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전날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스1
혼성 양궁 단체전부터 여자 단체전, 남자 단체전까지. 한국 양궁이 지금까지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대회 금메달을 모두 휩쓴 데는 현대차그룹의 '뚝심 지원' 뒷받침이 컸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이후부터 전방위적 기술 지원 방안을 논의해왔다.
사진=현대차그룹
27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이번 양궁 지원 프로젝트는 현대차그룹 회장이자 대한양궁협회장인 정의선 회장(사진)의 이른바 '양궁 덕질'에서 시작됐다.정 회장은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이 현대차그룹의 미래차 연구개발(R&D) 기술과 만나면 선수들의 기량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에 2016년 리우올림픽이 끝난 뒤 단순 후원을 넘어선 지원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강점인 R&D 기술 지원을 집중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인공지능(AI) 코치, 고정밀 슈팅머신, 점수 자동 기록 장치, 비전 기반 심박수 탐지, 선수맞춤형 그립 등 5가지 신기술을 양궁팀에 선보였다.

고정밀 '슈팅머신', 최고 화살 골라낸다

고정밀 슈팅머신. 최상 품질의 화살을 선별하는 장비. 사진=현대차그룹
양궁에서 화살은 최상의 성적을 내기 위한 필수 장비다. 선수들이 화살 선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다. 품질도 중요하고 자신과 잘 맞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은 이 화살 선별 과정 자동화를 위해 '슈팅머신'을 개발했다. 정확도와 정밀도까지 갖춰 최고 품질의 화살을 골라내는 데 도움을 준다.

선수들은 70m 거리에서 슈팅머신으로 활을 쏴 새 화살의 불량 여부를 시험한다. 과녁에 쏘아진 화살이 일정 범위 이내 탄착군을 형성하면 합격이다. 슈팅머신을 사용하면 힘, 방향, 속도 등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이 가능해 선수 컨디션, 날씨, 온도 등에 제한 없이 화살 가리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화살 분류 작업은 1차로 슈팅머신을 통해 불량 화살을 솎아낸 뒤, 선수들이 직접 자신에 맞는 화살을 시험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2중, 3중 분류를 통해 선수들이 균일한 품질의 화살을 가지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국가대표 선수단도 슈팅머신의 성능에 매우 만족했다"고 귀띔했다.

'전자 과녁'으로 점수 데이터화…분석에 용이

점수 자동 기록 장치. 점수를 자동으로 판독하고 데이터 베이스화.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점수 자동 기록' 장치도 지원했다. 정밀 센서 기반의 '전자 과녁'을 적용해 점수를 자동으로 판독, 저장하는 기술이다. 전자 과녁은 무선 통신을 통해 점수를 모니터 화면에 실시간으로 표시한다. 선수나 코칭 스태프가 직접 과녁에 가거나 망원경으로 보지 않더라도 효과적으로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점수만 표시되는 것이 아니라 화살 탄착 위치까지 정확히 모니터에 잡힌다. 현대차그룹은 점수와 탄착 위치를 데이터화해 훈련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데이터는 선수의 발사 영상, 심박수 정도 등과 연계해 선수 상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점검·지도하는데 활용됐다.

얼굴 색상변화까지 감지해 '심박수 측정'

비전(Vision) 기반 심박수 측정 장비. 비접촉 방식으로 선수들의 생체정보 측정. 사진=현대차그룹
심박수는 선수들의 긴장도를 나타내는 중요 지표다. 현대차그룹은 '비전 기반의 심박수 측정 장비'를 선수단에 지원했다. 선수 얼굴의 미세한 색상 변화를 감지해 맥파를 검출, 심박수를 측정하는 장비다. 경기나 훈련 중 접촉식 생체신호 측정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첨단 비전 컴퓨팅 기술을 활용했다.

보다 정교한 심박수 측정을 위해 선수 얼굴 영역을 판별해 주변 노이즈를 걸러내는 별도의 안면인식 알고리즘을 개발해 적용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훈련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송용 원거리 고배율 카메라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축적된 심박수 정보는 점수 데이터와 연계해 선수의 심리적 불안 요인을 제거하는데 활용됐다.

‘인공지능 코치’로 자세 바로잡는다

딥러닝 비전 인공지능 코치. 선수 훈련 영상을 분석에 최적화해 자동 편집.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은 인공지능 전문 조직 에어스(AIRS) 컴퍼니가 보유한 AI 딥러닝 비전 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 코치'를 개발했다. 선수들의 훈련 영상을 자동 편집해주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실전을 위한 분석이 한층 쉬워졌다.

영상 속 선수가 활시위를 당기고 쏘는 시점과 과녁 내 화살이 꽂히는 시점만을 정확히 포착해 하나의 짧은 영상으로 자동 편집해 준다. 준비 동작 등 분석에 불필요한 영상은 제외해 활용도를 극대화했다.

이 같이 최적화된 편집 영상을 통해 선수들이 평소 습관이나 취약점을 집중 분석,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3D 프린터로 꼭 맞는 '그립' 제공

맞춤형 그립. 선수의 손에 최적화된 그립을 3D 스캔해 3D 프린터로 제작. 사진=현대차그룹
선수들은 보통 활의 중심에 덧대는 '그립'을 자신의 손에 꼭 맞도록 직접 손질한다. 기성품을 자신만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시간 경기 도중 그립이 손상되면 새 그립을 다시 손에 맞도록 다듬어야 해 컨디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3D 스캐너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선수 개개인 손에 꼭 맞는 맞춤형 그립을 제작했다. 기존에 손질된 그립을 3D 프린터를 통해 그 모습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그립 재질도 알루마이드, PA12 등 신소재로 다양화했다. 알루마이드는 가벼운 데다 미끄러짐이 없고 PA12는 내구성과 방수성이 우수한 특징이 있다.

현대차그룹의 양궁 사랑은 뿌리가 깊다. 1985년 정몽구 명예회장이 대한양궁협회장에 오른 뒤 2005년부터는 아들인 정의선 회장이 자리를 이어받아 한국 양궁을 전폭 지원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여자 단체전에서 한 차례도 빠짐없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9연패' 위업을 달성하는 내내 조용히 뒷받침해온 것이다.정의선 회장은 지난주 미국 출장을 마치자마자 양궁 응원을 위해 곧바로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곳에서 정 회장은 양궁 혼성 단체전을 비롯해 여자, 남자 단체전 결승전 자리를 지키며 선수들을 향해 열띤 응원을 보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