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에 얽힌 과학, 사회, 돈…논픽션 '5리터의 피' 출간
입력
수정
지금 세계 어딘가에서 3초마다 누군가는 낯선 사람의 피를 받는다.
176개국의 헌혈 센터 1만3천282곳에서는 해마다 1억1천만 명이 헌혈한다. 장기 거래는 '혐오 시장(repugnant market)'으로 불리지만, 피는 신체 조직인데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매우 흔한 일로 받아들인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즈 조지는 논픽션 '5리터의 피'(한빛비즈 펴냄)에서 피에 얽힌 과학에서부터 사회, 역사, 문화, 종교 그리고 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 제목은 성인의 혈액량이다. 골수는 1초마다 200만 개에 이르는 적혈구를 생성하며 성인의 피 5ℓ 속에는 적혈구가 약 30조 개 들어 있다.
적혈구들은 날마다 몸을 한 바퀴씩 완전히 순환한다.
이동 거리는 지구 반 바퀴가량인 약 1만9천㎞에 이른다. 저자가 방문한 영국 글로스터셔주 필튼에 있는 혈액·이식센터에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기증받은 혈액 중 3분의 1을 처리한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헌혈한 피 4천550ℓ가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백혈구를 제거한 피는 적혈구, 신선동결혈장, 혈소판, 동결침전제제, 전혈 등으로 가공된다. 이 센터에서는 병원 90곳에 정기적으로 혈액을 공급하지만, 이따금 예상치 못하게 피를 요청받으면 택시에 승객처럼 혈액 주머니를 태워 보내며 오토바이 자원봉사자들이 배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반면, 저자가 찾은 인도에서는 자발적 헌혈로 혈액을 공급하는 것은 법전에만 존재한다.
뉴델리의 대형 병원에서 저자는 사실상 거래인 '가족 대리 헌혈'이 일반적임을 확인한다.
환자에게 피가 필요하면 친척이나 친구가 환자를 대리해 헌혈하는 방식이다.
인도에서 익명의 자원자에 의존하는 헌혈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인도인들에게 피는 생명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다급한 상황에서 피붙이를 위해서만 헌혈하지, 낯선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려고 헌혈하지 않으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가 1942년에 헌혈하는 사진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인도의 중요한 보물인 그가 건강을 함부로 훼손했다고 비난했다고도 한다.
책에 따르면 인도 대법원은 1996년 매혈과 '불가촉천민'의 헌혈을 금지했지만, 이 조항은 모두 유연하게 해석돼 매혈도 불가촉천민 헌혈도 왕성하게 번창하고 있다.
2017년 우타르프라데시주 경찰에 체포된 모드 아리프라는 남자는 매혈자 중개인에게는 500루피(약 8천720원)를, 매혈자에게는 1천 루피를 주고서 피를 뽑아 가정용 냉장고에 저장했다가 혈액은행과 병원에 4천 루피를 받고 팔았다. 저자는 현대의 헌혈-수혈 체계를 만든 선구자 2명을 소개한다.
20세기 초 여성이라는 장벽을 뚫고 대규모 헌혈, 혈액 저장 및 운송, 수혈 시스템을 마련한 의학자 재닛 마리아 본과 자발적 혈액 기증 체계를 만든 영국 중간급 공무원 퍼시 레인 올리버다.
이들의 헌신적 노력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피를 기증했는지, 그 피를 병사들에게 보내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위험을 무릅썼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아울러 혈액 거래의 어두운 면도 들춰낸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피가 전 세계 상품 중 교역량이 13번째로 많으며 혈액제제는 대부분 혈장에서 추출한 것으로 원산지는 세계 최대의 혈장 수출국 미국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미국이 이런 혈액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은 연간 약 2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캐나다 중남부에 있는 어느 혈장 기업을 취재해 혈액 거래의 이면을 고발하고, 오염된 혈장을 수혈해 이중으로 고통받는 혈우병 환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김정아 옮김. 492쪽. 2만5천 원.
/연합뉴스
176개국의 헌혈 센터 1만3천282곳에서는 해마다 1억1천만 명이 헌혈한다. 장기 거래는 '혐오 시장(repugnant market)'으로 불리지만, 피는 신체 조직인데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매우 흔한 일로 받아들인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즈 조지는 논픽션 '5리터의 피'(한빛비즈 펴냄)에서 피에 얽힌 과학에서부터 사회, 역사, 문화, 종교 그리고 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 제목은 성인의 혈액량이다. 골수는 1초마다 200만 개에 이르는 적혈구를 생성하며 성인의 피 5ℓ 속에는 적혈구가 약 30조 개 들어 있다.
적혈구들은 날마다 몸을 한 바퀴씩 완전히 순환한다.
이동 거리는 지구 반 바퀴가량인 약 1만9천㎞에 이른다. 저자가 방문한 영국 글로스터셔주 필튼에 있는 혈액·이식센터에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기증받은 혈액 중 3분의 1을 처리한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헌혈한 피 4천550ℓ가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백혈구를 제거한 피는 적혈구, 신선동결혈장, 혈소판, 동결침전제제, 전혈 등으로 가공된다. 이 센터에서는 병원 90곳에 정기적으로 혈액을 공급하지만, 이따금 예상치 못하게 피를 요청받으면 택시에 승객처럼 혈액 주머니를 태워 보내며 오토바이 자원봉사자들이 배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반면, 저자가 찾은 인도에서는 자발적 헌혈로 혈액을 공급하는 것은 법전에만 존재한다.
뉴델리의 대형 병원에서 저자는 사실상 거래인 '가족 대리 헌혈'이 일반적임을 확인한다.
환자에게 피가 필요하면 친척이나 친구가 환자를 대리해 헌혈하는 방식이다.
인도에서 익명의 자원자에 의존하는 헌혈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인도인들에게 피는 생명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다급한 상황에서 피붙이를 위해서만 헌혈하지, 낯선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려고 헌혈하지 않으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가 1942년에 헌혈하는 사진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인도의 중요한 보물인 그가 건강을 함부로 훼손했다고 비난했다고도 한다.
책에 따르면 인도 대법원은 1996년 매혈과 '불가촉천민'의 헌혈을 금지했지만, 이 조항은 모두 유연하게 해석돼 매혈도 불가촉천민 헌혈도 왕성하게 번창하고 있다.
2017년 우타르프라데시주 경찰에 체포된 모드 아리프라는 남자는 매혈자 중개인에게는 500루피(약 8천720원)를, 매혈자에게는 1천 루피를 주고서 피를 뽑아 가정용 냉장고에 저장했다가 혈액은행과 병원에 4천 루피를 받고 팔았다. 저자는 현대의 헌혈-수혈 체계를 만든 선구자 2명을 소개한다.
20세기 초 여성이라는 장벽을 뚫고 대규모 헌혈, 혈액 저장 및 운송, 수혈 시스템을 마련한 의학자 재닛 마리아 본과 자발적 혈액 기증 체계를 만든 영국 중간급 공무원 퍼시 레인 올리버다.
이들의 헌신적 노력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피를 기증했는지, 그 피를 병사들에게 보내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어떤 위험을 무릅썼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아울러 혈액 거래의 어두운 면도 들춰낸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피가 전 세계 상품 중 교역량이 13번째로 많으며 혈액제제는 대부분 혈장에서 추출한 것으로 원산지는 세계 최대의 혈장 수출국 미국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미국이 이런 혈액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은 연간 약 2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캐나다 중남부에 있는 어느 혈장 기업을 취재해 혈액 거래의 이면을 고발하고, 오염된 혈장을 수혈해 이중으로 고통받는 혈우병 환자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김정아 옮김. 492쪽. 2만5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