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회고록 '약속의 땅' 번역 출간

집권시 정책설명·내밀한 사생활 담겨…전세계서 600만부 팔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쓴 회고록 '약속의 땅'(원제 A promised land)이 번역 출간됐다. 대통령 집권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회고록 2권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주로 대통령이 된 후 2년 반 동안의 고군분투를 그렸지만,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내용도 비중 있게 소개했다.

인생 전반을 녹였기에 책은 920페이지(원서 768쪽)에 이를 정도로 묵직하다.
서두를 장식하는 어린 시절 내용부터 흥미롭다.

"대체로 걸음이 느리다"고 밝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이른바 '될성부른 떡잎'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한 아이를 괴롭힌 적도 있고, 십 대 때는 "게을렀고, 열성적으로 파티에 몰두"하는 학생이었다. 당시 "스포츠, 여자, 음악, 진탕 취할 계획"이 그의 머릿속을 채웠다고 한다.

아버지의 부재, 혼혈에 따른 인종적 편견, 인도네시아에서 유년을 보내며 경험한 극단적 빈부 격차 등이 이런 일탈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열성적인 어머니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렸지만, 모친은 아들을 하와이 최고 사립고에 보낼 정도로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또 다른 피난처는 책이었다.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독서를 강조한 덕택에 책 읽는 습관은 몸에 배었다.

어느 날 책 담은 상자를 들고 가는 오바마를 보며 외조부가 "도서관을 열 작정이냐?"고 말할 정도로 그는 책에 탐닉했다.

"나의 지식에는 체계가 없었다.

운율도 패턴도 없었다…. 이걸로 뭘 할지는 몰랐지만 내 소명의 성격을 알아내는 날엔 쓸모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부부 생활도 눈길을 끈다.

대체로 평탄했던 부부관계는 첫 딸이 태어난 후 고비를 맞았다.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는 혼자만 육아를 담당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오바마는 "대개 둘 다 녹초가 된 늦은 밤에 싸웠다"고 회고했다.

"나는 마흔이 다 됐고, 빈털터리였고, 굴욕스러운 패배를 당했고, 결혼 생활은 삐걱거렸다.

난생처음으로 내가 잘못된 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연방하원의원 선거 패배를 딛고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할 때도 아내의 격한 반대에 부딪혔다.

학자금 대출, 모기지 대출 등 각종 대출이 남은 데다가 두 딸의 학자금 저축도 시작하지 못해서다.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된 오바마가 내리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아내에게 내비칠 때도 미셸은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는 메워야 할 구멍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 거야."
2008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는 개인적 이야기보다는 정책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저자는 내각을 꾸리고, 세계 금융위기로 씨름하고, 블라디미르 푸틴의 심증을 떠보고, 불가능하게 보였던 '오바마 케어'를 통과시키는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장군들과 논의하고, 월스트리트 개혁을 위해 분투하며 중간선거에 패배하고도 레임덕 회기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과정도 소개한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장면 등에 대한 묘사에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북한 핵 문제도 다룬다.

저자는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 추진을 막기 위해 핵 문제에도 집중했다면서 "강제적 경제 제재를 비롯해 두 나라(이란·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의 강도를 높일 때"라고 밝힌다.

이처럼 자신과 상대한 국내외 세력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발언하는가 하면, 백악관 생활이 아내와 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진솔하게 고백한다.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시선을 끈다.

대선후보를 정하는 민주당 경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 대해서는 "근면하고, 호감이 가고,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평가하고, 현재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에 대해선 "늘 다정하고 매사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모조리 털어놓았다.

매력적인 성격"이라고 소개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해서도 "업무 이외에 개인적 삶을 드러내지 않았고 활기는 없었지만 정직하고, 직설적이며 못 말릴 정도로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책은 전 세계적으로 6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이는 오바마가 직접 쓴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330만 부), '담대한 희망'(420만 부)을 뛰어넘는 수치다. 웅진지식하우스. 노승영 옮김. 3만3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