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자들, 폭염·코로나 '이중고'…"끝까지 지킬 것"

천막 내부 한증막…코로나로 사람 모으기도 어려워
"30분만 서 있어도 햇빛 때문에 얼굴이 따가워요. 열기는 또 어떤지 숨이 턱턱 막힌다니까.

"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거리. 김계월(58)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본부 아시아나KO지부장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바닥에 물을 뿌렸다.

아침부터 달궈진 바닥이 뿜어내는 열기를 식혀보려는 자구책이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비닐 천막이지만,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는 내부가 한증막으로 변한다.

하루 12시간씩 자리를 지키는 해고노동자들도 한낮에는 뿔뿔이 흩어져 더위를 피할 수밖에 없다.

김 지부장은 "못 참겠다 싶으면 옆 건물에 들어가서 에어컨을 쐬고 나온다"면서 "일단 살아야 투쟁도 하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는 농성에 나선 노동자들은 힘겨운 복병이다.

지난해 9월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이스타항공 해고노동자들은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간 29일 오후에도 파라솔 한 개에 의지해 자리를 지켰다.

공정배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부위원장은 "천막에 놓아둔 물은 뜨거워서 마시지 못하고, 철제 펜스를 맨손으로 잡았다가 화상을 입을 뻔한 적도 있다"면서 "불판 위에 앉아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반일행동 활동가들은 그늘 한 점 없는 도로 한편에서 양산과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와 싸우고 있다.

민지원(24)씨는 "한낮에는 아스팔트 바닥이 끓는 것처럼 뜨겁다"면서 "시민들이 가져다주는 얼음물과 아이스팩으로 그나마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강화된 거리두기는 야외 농성장에는 또 다른 부담이다.

지난 3월부터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며 여의도 이룸센터 앞을 지키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사람을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임소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 법 제정을 촉구하려면 꾸준히 집회를 열어야 하는데 거리두기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면서 "사람을 모으기가 너무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지부장도 "더위만큼 힘든 게 동지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느끼는 외로움, 응원하러 온 분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진 뒤 느끼는 미안함"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주 응원 기도회를 해주던 목사님들이 (코로나19 때문에) 기도회를 못 하게 돼 미안하다며 휴가비를 모아줬다"면서 "직장 생활 수십 년 동안 못 받은 휴가비를 해고당한 뒤 받았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폭염에 외로움까지 겹쳤지만, 농성장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는 강하다.

공 부위원장은 무더운 농성장에서도 조종사 업무 매뉴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원래 눈 감고도 하던 업무인데, 1년 넘게 쉬다 보니 가물가물해졌다"며 "더위 속에서 버틴 의미가 있도록 해고된 동료 모두 하루빨리 복직됐으면 좋겠다"면서 웃었다.

소녀상 옆을 지키는 민씨는 "농성장에 오는 시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어른들이 할 일을 대신시켜 미안하다'는 말"이라며 "우리가 아니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지킬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버틴다.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를 할 때까지 농성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