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존재를 다시 보다…이수경·제인 진 카이젠 개인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달빛 왕관'·'이별의 공동체' 동시 개막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붙여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유명한 이수경(58)은 옛것, 버려진 것에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돼 자란 제인 진 카이젠(41)은 자신의 경험과 광범위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영상 작업에서 버려진 자들의 이야기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작업 매체도 내용도 다르지만 묘하게 접점이 있는 두 작가의 개인전이 아트선재센터에서 29일 동시에 개막했다.

이수경 개인전 '달빛 왕관'은 왕관을 모티브로 하는 새로운 연작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신라 금관과 백제 금동대향로에서 영감을 받은 '달빛 왕관' 연작은 가장 아랫부분에 왕관이 있고, 그 위로 항아리처럼 볼록한 중간부, 첨탑처럼 가늘고 뾰족한 상부로 구성된 형태다.

작품 표면을 철, 놋쇠, 유리, 진주, 자개, 원석, 거울 파편 등 다양한 재료들이 덮고 있다.

기도하는 손, 십자가, 용, 식물, 만화 주인공과 요술봉 등 여러 상징적인 형상과 무늬가 정교하게 이어진다. 파편을 연결해 만든 '번역된 도자기'처럼 '달빛 왕관'도 조각난 재료와 기존 관념에서 이탈한 상징을 융합해 새로운 형체를 이룬다.

이수경은 "왕관이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휘황찬란한 왕관처럼 빛나고 내가 하나의 신전이며 내면의 신성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수경은 지난 2017년 제57회 베네치아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청되는 등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보스턴 순수미술박물관, 런던 영국박물관 등 해외 다수 기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제인 진 카이젠 개인전 '이별의 공동체'는 전시 제목과 동명의 영상 설치 작업을 비롯한 최근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의 고향인 제주의 자연과 샤머니즘을 매개로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차별받고 소외된 이들, 부서진 공동체를 다룬다.

지난 2019년 제58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작품이기도 한 '이별의 공동체'는 바리데기 신화를 서사의 틀로 삼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졌다가 사후 세계에서 돌아온 후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무당의 길을 선택한 바리에 대한 무속 신화이다.

작품에는 제주와 서울, 비무장지대(DMZ)의 모습, 작가가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독일, 미국 등에서 만난 이주민 여성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제주 4.3 학살의 생존자인 무당 고순안의 제의 장면이 교차한다.

작가는 "서울에서 첫 개인전인데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되는 등 어려움 끝에 작품을 보여드리게 돼 기쁘다"라며 "작업을 통해 시간의 순환, 국경과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인 진 카이젠은 역사, 기억, 번역, 이주 등을 주제로 영상 설치, 실험 영화,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 연 개인전 '이별의 공동체'는 덴마크 미술비평국제협회(AICA)의 '올해의 전시'로 선정됐다.

버려진 조각들, 버려진 사람들을 다루는 이수경과 제인 진 카이젠의 전시는 풍부한 상징과 서사로 채워졌다. 분열된 것들을 모으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두 전시는 9월 26일까지 나란히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