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언론중재법 찬성한 기자 출신 의원의 가짜뉴스

폭스 '개표기 조작' 보도 피소
가짜뉴스 아닌 명예훼손 소송

조미현 정치부 기자
“언론의 자유가 가장 보장되는 미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이자 범여권인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가 가짜다’라고 주장했는데 거기에 동조한 언론들이 개표기를 만든 회사로부터 몇조원에 이르는 소송을 (당)하고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언론중재법을 찬성하면서 내세운 근거다. 언론중재법은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를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언론 보도에 최대 다섯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김 의원이 말한 ‘개표기 회사’는 미국 선거관리위원회에 개표기를 공급한 도미니언시스템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 결과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패배한 트럼프 진영은 개표기 조작으로 부정 투표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도미니언시스템은 해당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폭스뉴스에 16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의원의 주장과 달리 도미니언시스템이 문제로 삼은 것은 가짜뉴스가 아니라 ‘명예훼손(defamation)’이다. 미국은 거짓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언론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더구나 해당 사건은 아직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 폭스뉴스 측은 “언론의 보도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보호돼야 한다”며 재판의 기각을 주장하고 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기 때문에 판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의원이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팩트’도 있다. 도미니언시스템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정치인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은 유튜브, SNS 등 1인 미디어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SNS 등을 통한 정치인발(發) 가짜뉴스는 이 법으로 손해배상이 불가능하다. 열린공감TV 등 친여(親與) 성향 유튜브 채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 의혹을 제기해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백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이재명 경기지사 측은 지난달 30일 ‘이 지사가 지역감정을 꺼내 들었다’고 보도한 기자를 허위사실 공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에 이낙연캠프의 오영훈 수석대변인은 이 지사를 향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언론중재법이 필요하다고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여권에 되묻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