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에도 DHC 매출 증가…日기업 ESG경영 말뿐이었나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SNS서 비난 쇄도해도 매출은 오히려 증가
'인권이 최우선'이라던 유통사들 DHC와 거래지속
"매출 비중 큰 DHC 상품 내릴수는 없어" 항변
日 최대유통사 이온 나선뒤에야 DHC 잘못 인정
일본 화장품 대기업 DHC가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자사 공식 홈페이지에 잇따라 게재해 SNS에서 집중 비판을 받았지만 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회사들이 인권존중을 경영의 최우선 지침으로 내세우면서도 전체 매출에서 DHC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식해 침묵한 탓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기업의 ESG(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 경영의 진정성이 의문스럽다고 2일 지적했다.논란을 일으킨 발언은 작년 11월 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사진)이 자신의 명의로 DHC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이다. 요시다 회장은 건강보조식품 경쟁사인 산토리를 거론해 "산토리의 광고에 기용된 탤런트는 어찌 된 일인지 거의 전원이 코리아(한국·조선) 계열 일본인이어서 인터넷에서는 '존토리'라고 야유당하는 것 같다"고 썼다.

존토리는 재일 한국·조선인 등을 멸시하는 표현인 '존'(チョン)에 산토리의 '토리'를 합성한 표현이다. 요시다 회장은 "DHC는 기용한 탤런트를 비롯해 모든 것이 순수한 일본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요시다 회장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SNS와 인터넷에서는 DHC에 대한 비난이 빚발쳤다. 지난해 12월 트위터에는 DHC를 비판하는 글이 30만건 이상 올라왔다. 지난 6월까지도 DHC 비판 트윗은 매월 10만건을 넘었다.반면 마트와 약국 등 DHC 상품을 취급하는 유통회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한 유통 대기업은 작년 가을 인권지침을 제정하고 공식사이트에 "인권존중은 모든 회사 활동의 기반으로서 거래처 등 사업파트너에게도 인권지침을 따르도록 한다"고 강조한 직후였지만 DHC와 거래를 이어갔다.

이 회사 관계자는 "DHC 상품을 찾는 손님이 있기 때문에 우리만 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인권존중은 극히 중요한 사회적 책임으로 거래처에도 인권침해에 가담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해 온 또다른 유통회사 관계자도 "DHC의 매출 비중이 커서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판매채널이 유지된 덕분에 DHC의 매출에도 변화가 없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국 약 460개 마트의 판매동향을 집계한 결과 발언 이후 DHC의 영양보조제와 여성 기초화장품 등 주력상품의 매출은 작년 7월을 웃돌았다. 영양보조제의 지난 4~5월 매출은 작년 7월에 비해 140% 늘기도 했다.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사들이 광고 게재를 거부하고, 고치현 난고쿠시 등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DHC와 맺은 건강보조식품 제공 협약을 끊었지만 실적에는 타격이 없었던 셈이다.

막무가내였던 DHC의 행보를 바꿔놓은 것은 거래처였다. 일본 최대 유통기업 이온그룹은 지난 6월2일 "해당 문제에 대한 확인을 요청한 결과 DHC가 발언의 잘못을 인정하고 5월31일까지 발언을 철회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DHC가 이온그룹의 인권기본방침을 따랐다고 판단해 거래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온그룹이 '혐한 발언을 계속하면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서야 DHC가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이온 관계자는 "해당 발언과 관련해 문의가 여러차례 있었다"며 "이온그룹은 앞으로도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박리다매형 사업의 특성상 잘 팔리는 상품을 진열대에서 치우기는 어렵다"던 소매업체 관계자도 "이온 덕분에 살았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