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권에 눈감더니 웬 인도적 협력? [여기는 논설실]

사진=뉴스1
청와대가 "코로나는 남북 모두의 현안"이라며 백신과 방역에서 북한을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통일부는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협력물자 반출 신청 2건을 승인했다. 전 세계를 말그대로 패닉으로 몰아넣은 코로나에 남북 역시 예외일 수 없으며 가능하다면 북한 주민들이 코로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 역시 전체주의 독재 정권 하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필요한 조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 주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문제에 관한한, 북한 주민들의 자유나 권리, 인권 등에 대해 철저히 외면해왔다.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권침해가 심한 나라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문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이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에도 침묵을 지켜왔다. 유엔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에 문 정부가 올해까지 3년 연속 불참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200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이래 2018년까지 줄곧 이름을 올렸었다. 그러던 것이 현 정부들어 이렇다할 설명 없이 계속 빠져왔다. 북한 인권보다는 김정은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대북전단금지법' 도 마찬가지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말한다. 실제 대북전단금지법이라는 이름의 법은 존재하지 않고 2020년 12월 14일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말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6월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하루 만에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해 12월 14일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강제 종료시키고 재적 의원 180명 전원 찬성으로 강행 처리했다. 법 개정에 반대하는 측에서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여야간 견해 차이나 이념적 지향점 차이, 그리고 법 개정 계기 등을 떠나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와 우리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모두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도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다. 북한 역시 대한민국 영토며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본다는 뜻이다. 실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이 헌법 조항을 근거로 탈북민의 법적 지위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줄곧 판단해왔다. 따라서 헌법상 우리 국민인 북한 주민들을, 한국을 비롯 북한 이외 세계에 대한 정보로부터 사실상 차단하는 대북전단금지법은 헌법상 권리인 알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알권리는 대부분 국가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우리 헌법에는 명시적 규정은 없지만 언론 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1조가 그 근거 규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1989년 알권리를 "정보에의 접근,수집, 처리의 자유"라고 규정하며 헌법21조에 근거한 권리로 인정한 바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또 우리 국민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이런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막고 심지어 처벌까지 한다는 점에서 역시 헌법 21조가 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다. 국제사회가 이 법에 계속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법안 통과 직후 미국·영국·캐나다·유럽연합(EU) 등의 정부·의회는 잇달아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처사”라며 법 개정 재고를 촉구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한국 정부가) 김정은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의 ‘2020 한국 인권 보고서’는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권단체들의 의견을 적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같은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인권침해 방조에 대해 국제사회가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뜻으로 민주국가의 정당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될 발언이었다. 이렇게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복지엔 냉담한 문 정부가 북한에 코로나 관련, 백신과 방역에서 지원할 뜻을 밝히고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한 것은 다름 아니라 김정은이 사실상 SOS를 쳤기 때문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김정은은 지난달 27일 열린 제7회 전국노병대회에서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로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봉쇄에 따른 어려움에 코로나 확산까지 겹쳐 정권 자체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남북한 통신선을 복원하고 한국에 코로나 지원까지 요청한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문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김정은이 필요에 의해 코로나 지원을 요구하자 이에 화답한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전체주의 세습 독재에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문 정부는 우리 동포이자 헌법상 우리와 같은 국민인 북한 주민들의 처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직 김정은 김여정 남매의 비위를 맞추는데만 골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극단적 비정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