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철심 박고도 포기 안한 신재환…결국 가장 높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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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조 역대 두번째 金도마는 출발에서 착지까지 겨우 4초 만에 완성되는 예술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힘이 관건이다. 작은 실수 하나, 착지에서의 미세한 흔들림에 따라 순위가 뒤바뀐다.
양학선 이후 9년 만에 금메달
2위와 동점이었지만 난도 높아
학창시절 허리디스크 부상으로
"체조 관둬라" 의사 권고 듣기도
2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 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도쿄올림픽 기계체조 도마 남자 결선에서 신재환(23)은 출전 선수 8명 중 여섯 번째로 도약했다. 4초의 짧은 시간 동안 손을 짚고 날아올라 공중에서 세 바퀴 반 비튼 뒤 착지했다. 최고 난도 6.0의 ‘요네쿠라 기술’이다. 결선에 오른 선수 중 가장 난도 높은 기술을 선보였다. 착지가 약간 흔들렸지만 난도를 모두 인정받고 수행점수 8.833점을 받았다. 감점은 0.1점이었다.2차 시기에서는 난도 5.6의 ‘여2’를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도약부터 공중에서 두 바퀴 반 회전, 착지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난도 5.600점, 수행점수 9.233점. 1, 2차 시기 평균 14.783으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뒤이어 출발선에 선 데니스 아블랴진(ROC)도 깔끔한 연기를 선보였다. 결과는 신재환과 동점. 하지만 신재환의 기술 난도 점수가 훨씬 높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양학선(29)이 도마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지 9년 만에 두 번째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었다.
신재환은 한국 기계체조의 숨겨둔 ‘비밀병기’였다. 165㎝에 58㎏의 체격으로, 체조선수 중에서 근력이 약한 편이다. 한때 부상으로 체조를 그만둘 뻔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허리를 비트는 동작을 많이 하다 보니 충북체고 2학년 때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고통으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허리에 철심을 하나 박는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며 체조를 이어갔다. 근성과 끈기, 강인한 체력으로 근력의 단점과 부상의 고통을 극복한 것이다.도쿄올림픽 출전까지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신재환은 도쿄올림픽 단체전 출전 국가(12개국)의 선수를 제외한 2018~2020년 국제체조연맹(FIG) 도마 세계랭킹에서 1위를 달려 개인 자격으로 도쿄행 출전을 사실상 확정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을 50일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FIG가 갑자기 방침을 바꾸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카타르 도하에서 FIG 월드컵을 열어 올림픽 출전에 필요한 랭킹 포인트를 주기로 하면서 자칫 올림픽 출전 티켓을 놓칠 뻔했던 것이다. 갑작스레 마련된 카타르 FIG 월드컵에서 5위를 기록, 2018~2021시즌 월드컵 합산 점수 85점으로 요네쿠라 히데노부(일본)와 세계랭킹 공동 1위가 됐다. 하지만 점수가 같으면 가장 높은 평균 점수 3개의 합산으로 랭킹을 결정한다는 FIG 규정에 따라 단독 1위가 되면서 올림픽 개인전 출전을 확정지었다.
어렵게 나선 올림픽 무대에선 무섭게 날아올랐다. 그는 이번 대회 도마 예선에서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예선 1차 시기 15.100점, 2차 14.633점으로 평균 14.866점을 받아 1위로 결선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어 압도적인 연기로 금메달을 따내며 ‘신재환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한국 남자 도마는 1988년 서울올림픽 박종훈의 동메달로 시작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유옥렬의 동메달, 1998년 애틀랜타올림픽 여홍철의 은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양학선의 금메달까지 올림픽 메달 계보를 이어왔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결선에 한 명도 진출하지 못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신재환이 금메달을 따내며 다시 한번 도마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했다.한국 기계체조는 이번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리는 경사도 이뤘다. 전날 여서정(19)이 도마 부문 동메달을 따내며 여자 기계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낸 데 이어 신재환이 금메달을 추가하며 금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기록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