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0줄에 발칵 뒤집혔다…롯데그룹 뒤흔든 '찌라시'의 정체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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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9일 오전 10시경, 한장의 ‘찌라시’가 롯데를 뒤흔들었다. '롯데그룹-유통 BU 찌라시'라는 제목이 붙은 이 문건은 오후 1시쯤엔 언론사를 비롯해 외부로 유출되며 일파만파로 퍼졌다.
10줄로 간단히 요약된 한장짜리 문서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롯데쇼핑, 롯데홈쇼핑 등 유통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유통BU에 대한 인사 및 조직 개편 전망을 담고 있었는데, 진위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유통 부문에 대한 그룹의 고민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단 진위 여부를 따지자면, 찌라시의 내용은 대부분 ‘거짓’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8월1일자로 그룹 임원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첫번째 전망부터 거짓임이 판명됐다. 롯데온을 별도 계열사로 분리할 예정이라는 내용 역시 ‘로뎅을 오뎅으로’ 잘못 베낀 수준이다. 롯데쇼핑은 백화점, 대형마트 사업부 등에서 각각 운영되던 온라인 관련 인력을 이달부터 롯데온으로 통합시키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올해 이베이코리아에서 영입한 나영호 롯데온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포석이다. 분사가 아니라 강희태 유통BU장(부회장) 직속으로 독립성을 키워 e커머스 전쟁에 본격 나서겠다는 게 개편의 골자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인사를 하려면 그에 관한 적법한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진행 중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찌라시의 내용은 모두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일축했다.
거짓임이 드러나긴 했지만, 찌라시의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누가 작성했냐’에 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어서다. 롯데그룹에선 내부 소행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나 정치권에서 작성되는 아니면 말고식의 통상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롯데 경영진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신 회장에게까지 찌라시의 내용이 보고됐다는 건 그룹 경영진이 이 사태를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 회장은 찌라시에 관한 보고를 받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신 회장이 ‘발본색원’을 하명했다는 말도 들린다. 전달자에 따라 발언의 강도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신 회장과 그룹 경영진은 찌라시가 내부에서 생산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찌라시의 유통 과정만 봐도 내부 생산일 가능성이 높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찌라시가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서 11시 정도까지 롯데지주를 비롯해 계열사 직원들에게 뿌려졌다”며 “그 후 2~3시간 정도 지나서 언론사 출입기자 등이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찌라시 작성자가 외부의 소행으로 비춰지도록 ‘위장된 무지’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도 내부의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현) 그룹기획실-롯데쇼핑 감사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과거 롯데그룹의 두뇌 역할을 했던 그룹의 전략기획실은 작년 8월 경영혁신실로 바뀌었다. 게다가 경영혁신실은 M&A 등 그룹의 미래를 설계하는 조직으로, 감사는 경영개선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찌라시 작성자는 일부러 틀린 내용을 넣어 자신이 내부자라는 것을 숨기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내부의 ‘누군가’는 왜 이 찌라시를 작성하고 유포한 것일까. 우선 지난해 8월13일 황각규 그룹 부회장을 용퇴시켰던 ‘깜짝 인사’에서 영감을 얻은 ‘뇌피셜’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신회장은 황 부회장을 지주 이사회 의장으로 옮기면서 이동우 하이마트 대표를 지주 신임 사장에 앉혔다. 작년에 그룹 전략기획을 손봤다면 올해는 유통사업부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유통BU 내의 위기감이 찌라시의 형태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롯데쇼핑 내 백화점 부문의 체감 온도는 한겨울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롯데마트만 해도 이미 전체 매장의 20%를 문닫으면서 관련 임직원 수가 대폭 줄었다. 롯데그룹의 ‘적자(嫡子)’이자 그동안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 준 백화점은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의 태풍에서 벗어나 있었다. 단순 뇌피셜을 넘어 올 연말 그룹 임원 인사와 관련한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說)도 제기된다.
이번 ‘찌라시 사태’는 롯데그룹이 그만큼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방증이다. 심신이 약해지면 오장육부 장기 중 어느 하나가 신호를 보내듯이 롯데그룹 내부의 병증을 미리 알려주는 전조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찌라시 한장이 오히려 롯데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롯데백화점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개념 백화점인 동탄점을 비롯해 9월 프리미엄 아울렛인 타임 빌리지 개장을 앞둔 롯데쇼핑으로선 성공적인 흥행을 위해 주마가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롯데홈쇼핑 등 일부 잘 나가는 계열사들도 자중에 자중을 거듭할 것이다. 이로써 그룹 내 보이지 않게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인사와 관련된 암투들도 사그러들 전망이다. 찌라시가 신 회장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래저래 올 10월 혹은 연말에 진행될 롯데그룹 정기 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10줄로 간단히 요약된 한장짜리 문서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롯데쇼핑, 롯데홈쇼핑 등 유통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유통BU에 대한 인사 및 조직 개편 전망을 담고 있었는데, 진위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유통 부문에 대한 그룹의 고민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단 진위 여부를 따지자면, 찌라시의 내용은 대부분 ‘거짓’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8월1일자로 그룹 임원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첫번째 전망부터 거짓임이 판명됐다. 롯데온을 별도 계열사로 분리할 예정이라는 내용 역시 ‘로뎅을 오뎅으로’ 잘못 베낀 수준이다. 롯데쇼핑은 백화점, 대형마트 사업부 등에서 각각 운영되던 온라인 관련 인력을 이달부터 롯데온으로 통합시키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올해 이베이코리아에서 영입한 나영호 롯데온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포석이다. 분사가 아니라 강희태 유통BU장(부회장) 직속으로 독립성을 키워 e커머스 전쟁에 본격 나서겠다는 게 개편의 골자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인사를 하려면 그에 관한 적법한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진행 중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찌라시의 내용은 모두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일축했다.
거짓임이 드러나긴 했지만, 찌라시의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누가 작성했냐’에 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어서다. 롯데그룹에선 내부 소행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나 정치권에서 작성되는 아니면 말고식의 통상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롯데 경영진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신 회장에게까지 찌라시의 내용이 보고됐다는 건 그룹 경영진이 이 사태를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 회장은 찌라시에 관한 보고를 받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신 회장이 ‘발본색원’을 하명했다는 말도 들린다. 전달자에 따라 발언의 강도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신 회장과 그룹 경영진은 찌라시가 내부에서 생산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찌라시의 유통 과정만 봐도 내부 생산일 가능성이 높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찌라시가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서 11시 정도까지 롯데지주를 비롯해 계열사 직원들에게 뿌려졌다”며 “그 후 2~3시간 정도 지나서 언론사 출입기자 등이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찌라시 작성자가 외부의 소행으로 비춰지도록 ‘위장된 무지’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도 내부의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현) 그룹기획실-롯데쇼핑 감사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과거 롯데그룹의 두뇌 역할을 했던 그룹의 전략기획실은 작년 8월 경영혁신실로 바뀌었다. 게다가 경영혁신실은 M&A 등 그룹의 미래를 설계하는 조직으로, 감사는 경영개선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찌라시 작성자는 일부러 틀린 내용을 넣어 자신이 내부자라는 것을 숨기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내부의 ‘누군가’는 왜 이 찌라시를 작성하고 유포한 것일까. 우선 지난해 8월13일 황각규 그룹 부회장을 용퇴시켰던 ‘깜짝 인사’에서 영감을 얻은 ‘뇌피셜’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신회장은 황 부회장을 지주 이사회 의장으로 옮기면서 이동우 하이마트 대표를 지주 신임 사장에 앉혔다. 작년에 그룹 전략기획을 손봤다면 올해는 유통사업부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유통BU 내의 위기감이 찌라시의 형태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롯데쇼핑 내 백화점 부문의 체감 온도는 한겨울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롯데마트만 해도 이미 전체 매장의 20%를 문닫으면서 관련 임직원 수가 대폭 줄었다. 롯데그룹의 ‘적자(嫡子)’이자 그동안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 준 백화점은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의 태풍에서 벗어나 있었다. 단순 뇌피셜을 넘어 올 연말 그룹 임원 인사와 관련한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說)도 제기된다.
이번 ‘찌라시 사태’는 롯데그룹이 그만큼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방증이다. 심신이 약해지면 오장육부 장기 중 어느 하나가 신호를 보내듯이 롯데그룹 내부의 병증을 미리 알려주는 전조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찌라시 한장이 오히려 롯데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롯데백화점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개념 백화점인 동탄점을 비롯해 9월 프리미엄 아울렛인 타임 빌리지 개장을 앞둔 롯데쇼핑으로선 성공적인 흥행을 위해 주마가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롯데홈쇼핑 등 일부 잘 나가는 계열사들도 자중에 자중을 거듭할 것이다. 이로써 그룹 내 보이지 않게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인사와 관련된 암투들도 사그러들 전망이다. 찌라시가 신 회장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래저래 올 10월 혹은 연말에 진행될 롯데그룹 정기 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