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사업 정리해도 근로자는 안고가라"는 대법원

"독립적인 별개사업체 정리 땐 통상해고 가능"
고법, 일진전기 판결에 기존 대법원 법리 따랐지만
"대법원, 사실상 통상해고 가능 규정 사문화" 평가
사업부를 폐지하는 경우에도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동계에서는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판결이라며 반기고 나섰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적자 사업을 접는 경우에도 근로자를 안고 가라는 내용이라 기업 인력 운영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는 지난달 29일, 일진전기 주식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사건을 원심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정리해고 vs 통상해고
전선 전문기업인 일진전기는 통신사업부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104억의 누적 적자를 내자 사업부 폐지를 결정했다.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지만 56명 중 30명만 신청하자, 회사는 이 중 일부 인력만 전환배치했을 뿐 결국 같은 해 12월 남은 근로자 6명에게 해고 통지서를 교부했다. 이에 대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노위가 부당해고로 판단하자 일진전기는 부당해고 판정을 취소하라며 중노위원장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이 사건에서는 '사업부 폐지'를 이유로 한 근로자 해고가 가능한지가 문제됐다. 이는 통신사업부의 '독립성' 여부와 연결된다. 기존 대법원 판결은 '사업'을 폐지하는 경우만큼은 근로자를 '통상해고'할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경영상 자유라고 봤다.

만약 통신사업부가 '독립성을 가진 별개 사업체'라면 통상해고 대상이 되지만 '전체 사업 중 일부 사업부서 폐지'로 본다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 정리해고라면 △경영에 중대한 위기가 있는 지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 했는지 등 복잡한 요건을 살펴봐야 한다. 최근 대법원은 회사가 부도 직전에 이를 정도로 경영상 어려움이 없다면 정리해고는 가급적 허락해 주지 않는 추세다. 결국 통신사업부의 독립성 판단이 해고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셈이다.

이 사건 원심을 맡았던 서울고법은 통신사업부 폐지를 '통상해고'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신사업부는 애초에 별개 법인으로 운영돼 오다가 일진전기에 합병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 공장별로 노동조합도 따로 조직됐고 통신사업부와 다른 사업부 간 생산 공정도 완전히 분리됐다"며 "사업부 간 업무 교류나 업무 호환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독립된 별개 사업체라는 평가다.하지만 대법원은 완전히 동일한 사실관계를 두고 정반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본사가 전사업부 경영을 총괄하고 있으며 통신사업부는 별도 영업조직도 없다"며 "회사 ERP(기업자원관리시스템) 상으로는 사업부 별로 회계가 구별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회계상 편의를 위한 내부 자료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또 "통신사업부 근로자는 단기간 직무교육 거쳐 다른 사업부에 편입될 수 있어서 각 사업부 사이에 근로자 호환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고등법원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사건 1심을 맡았던 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전에 독립성을 인정해 통상해고를 수긍했던 판례들은 '제조업'과 '청소업'처럼 사업이 전혀 다른 경우였다"며 "일진전기 사건은 그런 사례들에 비해 독립성 판단이 애매했는데 이번에 대법원이 구분선을 좁게 그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기업 경영상 자유' 축소 해석
서울고법은 특이하게 통상해고라고 판단했음에도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 정리해고 요건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신사업부를 그대로 유지하면 회사 전체 경영 악화가 우려될 정도로 전체 실적 부진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며 정리해고를 할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회사가 신규채용을 중단하고 노사협의회를 개최해 희망퇴직도 받고 일부 근로자를 다른 사업부로 전환배치한 점을 고려하면 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도 다했다"라고 판단해 정리해고라고 하더라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전년도에 기본급을 9.5% 인상한 점에 비춰보면 고용을 유지할 여력이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없다고 봤다. 이어 "회사가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3개월분 임금을 제시한 것도 해고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일부 근로자를 타사업부로 전환하면서 고연령, 고임금 근로자가 배제되기 쉬운 기준을 정한 것도 공정한 해고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해 위법한 정리해고라고 결론내렸다.

대법원은 그간 사업을 폐지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근로자를 통상해고하는 것에 대해 '기업의 경영상 자유'로 인정해 왔다. 그런데 대법원이 독립성을 좁게 해석해 사실상 통상해고를 사문화 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확히 똑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원심과 대법원이 정반대 판단을 한 것은 기업 경영에 있어 사법리스크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리해고 정당성 판단에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한 노무사는 "퇴직위로금 지급 수준은 기업의 재량인데 일진전기가 3개월치를 제시했다고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나, 그나마 남아 있는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임금을 인상한 것도 기업에게 불리한 정황으로 본 건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