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로 몰려드는 영·독·불 군함…왜?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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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열강의 군함들이 남중국해를 비롯한 인도⸱태평양 해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영국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호가 지난달 말 남중국해에 진입했고, 독일 호위함 바이에른호이 지난 2일 아시아를 향해 출항했다. 앞서 프랑스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와 벵골만에서 사흘간 연합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남중국해는 연간 5조달러(약 5750조원) 규모의 무역량이 오가는 곳이다. 원유만 280억배럴 이상 묻혀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 베트남, 대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6개국과 맞닿아 있다. 중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상설재판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항행의 자유’를 강조하며 이곳에 군함을 통과시키는 등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서구 열강의 남중국해 진입에는 이 같은 정치⸱경제⸱외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 나라의 최근 움직임은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에 동참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서로 다른 계산이 숨겨져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아시아와 새로운 외교 관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영·일 동맹 복원에 공을 들이고 옛 식민지였던 인도와의 협력도 강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해역에 2척의 군함을 상시 배치할 계획이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20일 일본 도쿄에서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계획을 발표했다. 월러스 장관은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가 이끄는 항모타격단의 일본 방문 후에 이 같은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경쟁 국가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태평양에 군함을 파견하며 영향력을 높이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게 됐다. 일단은 우방국의 요청에 못이기는 체하며 군함을 파견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의 대(對)중국 수출액은 1103억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8.1%에 이른다. 미국 수출(8.8%)에 거의 맞먹고 이웃 프랑스(7.6%)보다 많다. 그래서 외교가에서는 독일이 전함을 파견하면서도 중국과 맞서지 않으려는 인상을 주려 애쓴다고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자국 영토를 갖고 있다. 이 지역의 프랑스 국민이 160만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벵골만 합동 해상훈련이 끝난 뒤 북한의 불법 해상환적 등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강습상륙함 토네르호와 호위함 쉬르쿠프호를 동아시아에 보내기도 했다.
이들 3국은 미국과 협력해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이 해역이 미⸱중 패권경쟁 무대로 국한되는 것을 방지하고 자국의 영향력도 넓히려는 두 개의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이미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이 대서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어 자칫 주도권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내일부터 5일간 남중국해에서 실탄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훈련 기간에는 관련 해역의 선박 통행을 일절 금지한다고도 발표했다. 이번 훈련은 미국에 이어 유럽 국가들이 인도·태평양에 군함을 파견하고 나선 상황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서는 청나라가 몰락한 19~20세기 유럽의 중국 진출과 결부시켜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북한까지 나서 “적반하장격 도발”이라며 중국 편을 들고 있다. 그 사이에 영국과 일본은 1902년 제정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맺었던 동맹관계를 다시 복원하려 하고 있다. 이래저래 열강의 각축 속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우리도 주변 외교 지형의 변화를 잘 살펴 긴 안목의 장기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남중국해는 연간 5조달러(약 5750조원) 규모의 무역량이 오가는 곳이다. 원유만 280억배럴 이상 묻혀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 베트남, 대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6개국과 맞닿아 있다. 중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상설재판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항행의 자유’를 강조하며 이곳에 군함을 통과시키는 등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서구 열강의 남중국해 진입에는 이 같은 정치⸱경제⸱외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세 나라의 최근 움직임은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에 동참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서로 다른 계산이 숨겨져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EU 탈퇴) 이후 아시아와 새로운 외교 관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영·일 동맹 복원에 공을 들이고 옛 식민지였던 인도와의 협력도 강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 해역에 2척의 군함을 상시 배치할 계획이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20일 일본 도쿄에서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계획을 발표했다. 월러스 장관은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호가 이끄는 항모타격단의 일본 방문 후에 이 같은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경쟁 국가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태평양에 군함을 파견하며 영향력을 높이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게 됐다. 일단은 우방국의 요청에 못이기는 체하며 군함을 파견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의 대(對)중국 수출액은 1103억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8.1%에 이른다. 미국 수출(8.8%)에 거의 맞먹고 이웃 프랑스(7.6%)보다 많다. 그래서 외교가에서는 독일이 전함을 파견하면서도 중국과 맞서지 않으려는 인상을 주려 애쓴다고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자국 영토를 갖고 있다. 이 지역의 프랑스 국민이 160만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벵골만 합동 해상훈련이 끝난 뒤 북한의 불법 해상환적 등 대북 제재 위반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강습상륙함 토네르호와 호위함 쉬르쿠프호를 동아시아에 보내기도 했다.
이들 3국은 미국과 협력해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이 해역이 미⸱중 패권경쟁 무대로 국한되는 것을 방지하고 자국의 영향력도 넓히려는 두 개의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이미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이 대서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어 자칫 주도권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내일부터 5일간 남중국해에서 실탄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훈련 기간에는 관련 해역의 선박 통행을 일절 금지한다고도 발표했다. 이번 훈련은 미국에 이어 유럽 국가들이 인도·태평양에 군함을 파견하고 나선 상황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서는 청나라가 몰락한 19~20세기 유럽의 중국 진출과 결부시켜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북한까지 나서 “적반하장격 도발”이라며 중국 편을 들고 있다. 그 사이에 영국과 일본은 1902년 제정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맺었던 동맹관계를 다시 복원하려 하고 있다. 이래저래 열강의 각축 속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우리도 주변 외교 지형의 변화를 잘 살펴 긴 안목의 장기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