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도 선물값도 전셋값도…정부가 多 결정해주는 나라

현장에서

음식물 3만원, 선물·경조사비 5만원
'김영란법' 규정 민간에도 적용 추진
전월세 신고제에 계란 가격까지 개입

투명한 사회 빌미로
국민 기본권 과도한 제한
정상적 국가라면 용납안돼

강진규 경제부 기자
정부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을 민간에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민간 영역의 불합리한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소수의 부조리를 근거로 사적 영역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를 시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정을 추진하는 청렴선물권고안에는 음식물 3만원, 경조사비 5만원(화환 10만원), 선물 5만원(농·축·수산물 10만원) 이하 등 김영란법의 규정을 민간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권익위는 선물 및 식사 등과 관련해 원·하청 관계 기업 등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관행 등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아 권고안 마련을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국가가 공직자도 아닌 일반인 실생활에 이렇게 깊숙하게 개입하려는 것은 과도하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는 폭거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간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이렇게 광범위한 행위 제한을 하는 것은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민간 영역에서 접대와 선물 등으로 발생하는 음성적 거래와 불공정 행위는 관련 법령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한우협회가 권고안에 대해 반대성명을 발표하면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을 인용한 것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권익위의 청렴선물권고안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전면적인 민간영역 통제를 떠올린 발상 자체가 더 큰 문제다. 코로나19 사태로 아무리 정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국가가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지난 몇 년간 펼쳐진 여러 정책을 돌아봐도 국민을 온갖 규제의 틀에 묶어놓으려는 시도가 많았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빌미로 이뤄진 대출규제와 거래규제, 징벌적 세금 부과 등이 대표적이다.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해 전세가격을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더니 전·월세신고제까지 시행하고 있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설립해 개인의 부동산 거래를 세세하게 들여다보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많은 전문가가 규제 일변도 정책이 오히려 서민을 더 고단한 처지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정부는 ‘부동산 투기만 잡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일상적 관계를 부정청탁 잣대로 보나…'기본권 침해' 선 넘은 정부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사태 이후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의 재산 및 부동산 재산 형성 과정을 등록하도록 한 것도 발상의 도발적 측면에서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와 닮았다. 일부의 잘못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수만 명의 관련 공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긴다는 점에서다.‘정부 만능주의’는 물가 관리에서도 여전하다. 올초까지 이어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 등으로 계란값이 크게 오르자 구체적인 가격 수준까지 언급하며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7000원대에 정체된 계란 가격이 6000원대로 내릴 수 있도록 특단의 각오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부의 물가통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유통업체들은 타산이 맞지 않아도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맞춰야 할 판이다.

권익위의 설명처럼 민간 영역에서도 사회적 부조리가 있다면 이를 규명하고 처벌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대책이 선량한 일반 국민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하는 식으로 나와서는 곤란하다. 전형적인 기본권 침해다. 무엇보다도 식사와 선물 수수의 적정성을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사람 간 일상적인 관계를 부정청탁의 잣대로 살펴보겠다는 것은 전·월세 신고제처럼 사전에 만남의 성격을 정부에 신고하라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