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서 뽑은 '친환경 첨단소재'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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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셀룰로오스 시장 개척 나선 기업들 (上)한솔제지는 지난해부터 친환경 첨단 소재 나노셀룰로오스(CNF)를 자동차 소재에 적용하는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구동벨트 및 시트, 흡음재 등을 만드는 자동차 소재기업들과 함께 나노셀룰로오스를 활용해 소재의 친환경성, 강도 향상 및 경량화를 실현하는 게 목표다.
철의 5배 강도, 무게는 5분의 1
세계시장 2030년 6조로 성장
日·핀란드, 제조기술·R&D 선도
국내선 10여개 업체 상용화 나서
車내장재·가구·화장품 등에 접목
"소재 기술 자립 지원 시급"
일본 2위 제지회사 일본제지는 화장품 제조사와 공동으로 나노셀룰로오스를 적용한 로션을 내놓고 시장 반응을 살펴보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볼펜잉크와 성인용 기저귀 및 항균시트에도 나노셀룰로오스를 응용하려는 산업계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나노셀룰로오스에서 ‘금맥’을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 간 경쟁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나노셀룰로오스는 나무 등 식물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 섬유를 나노미터(㎚, 1㎚=10억분의 1m) 크기로 쪼갠 천연 나노 소재다. 무게는 철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다섯 배 이상이다. 3차원(3D) 그물망 구조로 돼 있어 분산 및 열 안정성, 점도 조절성, 친수성 등의 특성이 있다. 강철보다 단단하면서 동시에 외부 작용에 따라 변화가 자유로운 셈이다.
나노셀룰로오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생분해까지 가능한 친환경 소재라는 점이 부각되면서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미용, 의료, 스포츠, 자동차,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소재 성능 자체도 우수하지만 환경친화적이어서 글로벌 시장에서 관심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배경이다. 산업계에 따르면 세계 나노셀룰로오스 시장은 2020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9% 성장할 전망이다. 2020년 1조원(1만3000t)에서 2025년 2조5000억원(3만t)으로 불어난 후 2030년 6조원(7만6000t) 규모로 크게 확대될 것으로 산업계는 보고 있다.나라별로는 전통적인 소재 강국 일본이 나노셀룰로오스 제조기술 면에서 다소 앞서 있다는 평가다. 세이코PMC는 신발 기업 아식스와 함께 나노셀룰로오스를 적용해 신발창 무게를 50% 이상 줄인 러닝화를 선보였다. 오사카대는 전자종이를 개발하고 태양전지와 트랜지스터 등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목재 강국 핀란드에서 연구가 활발하다. 제지사 UPM은 나노셀룰로오스를 활용해 상처 치유 효과를 향상시킨 창상피복제(습윤밴드)를 내놨다. 또 다른 제지업체 스토라엔소는 우유팩을 더 가볍고 단단하게 만드는 데 성공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서는 제지업체 한솔제지와 무림P&P를 비롯한 10여 개 기업이 상용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한솔제지는 앞서 무광 폴리우레탄 코팅제 제조업체와 협업해 자동차 내장재 및 가구에 적용한 데 이어 2차전지, 화장품, 자동차 소재 등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무림P&P는 최근 화장품 업체와 공동으로 나노셀룰로오스를 화장품 원료로 쓴 친환경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씨엔엔티는 나노셀룰로오스를 활용한 박막 스피커를 제조해 스마트폰에 적용한 바 있다.이승환 강원대 산림환경과학대학 학장은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정부 지원 아래 소재 개발이 활발한 반면 국내에선 아직 소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며 “소재 기술 자립을 위해서라도 나노셀룰로오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나노셀룰로오스
나무 조직 내 섬유소(셀룰로오스)를 나노미터(1㎚=10억분의 1m) 크기로 쪼갠 물질이다. 머리카락 10만분의 1 굵기에 불과할 정도로 얇으면서도 방탄 재료 케블라(kevlar) 섬유와 비슷한 높은 강도를 지닌다. 자연에서 생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첨단소재로 미용, 의료,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