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8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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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프롤로그>
죽음은 불현듯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세시대라는 트렌드로 사람들은 영생할 것처럼 일상을 흘려보내지만 사실은 언제라도 죽음은 찾아올 수 있기에 지금을 즐겁고 보람 있게 살아가야만 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1998>에서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남자는 세상과의 숙명적 이별을 준비하다가 불현듯 찾아온 한 여자를 만나 설레는 사랑에 빠지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게 된다. 하얀 눈 속에 짧게 왔다가는 크리스마스처럼 인생도 그런 것이기에 겨울까지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기다리기 힘들다면 오늘 8월의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당겨서 맞아보자.<영화 줄거리 요약>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한석규 분)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조용희 이별을 준비하던 중 어느 날 사진관을 찾아온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 분)을 만나면서 차츰 평온했던 일상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녀의 밝고 씩씩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생에 대한 미련이 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녀도 단속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드나들면서 정원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을 나눌 시간을 그리 길지 않고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관전 포인트>
A. 남자가 생을 정리해 가는 과정은?
정원은 남들 몰래 자신의 운명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생에 대한 미련이 없을 수 없어 생뚱맞게 친한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기도 하고, 혼자 비디오를 작동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연로한 아버지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하자 정원은 자신 없이 막막하게 살아갈 아버지 생각에 죄책감과 막막함으로 화가 난다.
B. 다림이 사진관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녀는 하루하루가 고달픈 아가씨다. 어려서부터 가족들에게 치이고 주차단속 일을 하며 사사건건 차주들과 연약한 몸으로 신경전을 벌여야 하면서 그야말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이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다. 그런 그녀에게 정원의 사진관은 고달픔을 잠시 잊을 수 있는 휴식처가 된다. 정원은 그런 당돌하면서도 생기발랄한 그녀를 바라보면 그저 웃기만 한다.
C. 정원은 어떤 남자인가?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은 첫사랑과도 헤어진 외로운 남자다. 언제까지나 평범하게 흘러갈 것만 같았던 그의 인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고 당황해하지만 묵묵히 받아들이고 조용히 생을 정리해 나간다. 하지만 어느 날 찾아온 다림의 존재로 흔들리게 된다. 어느새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어 버렸으며 그녀를 만나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녀, 하지만 너무 늦게 찾아온 사랑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아파하길 원치 않는다. 그에겐 너무나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다.
D. 두 남녀의 사랑 방식은?
그와 그녀의 만남은 여느 연인이 처음 만난 것처럼 차츰 상대를 알아가고 친근해가는 모습이다. 그들의 사랑은 특별하지도 격렬하지도 않다. 그저 같이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다. 여자에게 좋은 추억만을 남겨주고 싶은 남자와 막연하게 그와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리라고 꿈꾸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그녀와의 따스하고 애틋했던 감정을 간직하고 싶었던 남자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며 그녀를 만나는 것이 두려워진다. 어느 날 정원이 병원에 실려가자 기다리던 다림은 사진관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안타까운 그리움을 표시한다.
E. 영화의 엔딩은?
너무나도 무더웠던 그해 여름이 가고 어느새 흰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정원과의 지나간 추억을 간직한 다림은 그의 사진관을 찾아온다. 한동안 무슨 연유인지 그를 볼 수 가 없었고 모든 것은 예전 그대로인데, 그 남자만 없다. 하지만 사진관 쇼윈도에 걸려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띤다. 그것은 자신을 생각하는 남자의 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해 여름 있었던 그들의 크리스마스 같은 반짝이는 작은 행복은 두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에필로그>
남자는 떠나면서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라며 자신의 생을 가장 아름답고 설레게 해준 여자에게 애틋한 인사를 전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겨울의 하얀 눈송이가 아닌 여름의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크리스마스와 같은 짧지만 설레는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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