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 마음' 돼버린 부동산 규제 소급입법 [여기는 논설실]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세금과 관련한 법 개정 때마다 논란이 되는 게 소급적용 문제다. 기존 법령을 믿고 경제적 의사결정을 해온 국민의 권익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법률 불소급 원칙을 떠올린다면 소급입법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맞다. 그런데 유독 부동산 세금과 관련되기만 하면 정부나 국회 입맛대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게 소급적용 이슈다.

이른바 '투기꾼'을 포함한 부동산시장 교란 행위자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고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투기이익과 불로소득을 환수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땐 소급적용이란 칼을 꺼내 든다. 그렇지 않고 1주택자 실수요자의 경제생활을 곤란하게 하고 정권 지지율을 심각히 떨어트릴 것 같으면 슬쩍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법적 안정성이 중요하다며 이번엔 '소급적용 배제'를 강조하고 자애로운 정부인 양 한다.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민간 임대주택사업자 제도를 활성화하기로 하고 여러 세제 혜택(양도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합산 베)을 줬던 것을 1년 만에 '없던 일'로 만든 게 대표적이다. 처음엔 임대사업자들의 반발과 소급적용 논란을 의식해 기존 임대주택은 적용하지 않고, 신규 등록주택부터 혜택을 줄였다. 그런데 2년이 지난 뒤인 작년 중반, 다시 기존 임대사업자들의 세제 혜택조차 폐지하려 들었다.

결국 의무임대기간의 절반만 채우면 약속한 세금 혜택을 주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임대사업 등록이 말소된 주택이 고스란히 기존 사업자의 보유주택 수로 합산되면서 그러잖아도 급등한 보유세 폭탄을 맞게 된 것이다. 정부는 '소급적용' 논란을 교묘하게 피해갔지만, 정책의 급격한 변경과 취소로 인해 정부 말을 믿었던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봐야 했다.

작년엔 6·17 부동산 대책에 따른 대출 규제 강화로 잔금 대출을 못 받고 입주가 어려워진 아파트 수분양자들이 사실상 소급적용 피해를 봤다며 항의 집회를 여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지금의 전세난에 불을 더 지핀 임대차 3법도 전월세상한제 등의 실효성 있는 시행을 위해 기존 계약자에게도 소급적용하는 문제로 한참 동안 시끄러웠다. 이처럼 아파트 청약 자격부터 재건축 조합원 분양권 취득 자격, 부동산 관련 대출, 보유세·양도세 등 혜택에 이르기까지 소급적용 문제는 항상 논란의 중심이었다.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세금 규제 강화로 피해를 보는 측이 얼마나 저항하느냐가 갈등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부동산 경기 호황기나 집값 급등기엔 사회 분위기상 다주택자나 부자들이 거칠게 반발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적지 않은 폭발력을 가진 소급입법도 물 위로 드러나지 않거나, 잠깐 논란이 되다 이내 식어버린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이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그런 경우다.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 축소를 기존 주택소유자를 포함해 공히 적용하려 했으나, 적지 않은 소급적용 반발로 인해 새로 집을 사는 사람으로 대상을 축소키로 했다. 기존 1주택자는 장특공제 축소를 소급 적용받지 않고, 혜택을 계속 누리게 됐다. 그러나 다주택자는 1주택자가 되는 시점부터 장특공제를 주기로 해 사실상 소급적용 대상이 됐다. 적용 시점만 2023년으로 미뤄 양도세 폭탄을 피하려는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수 있는 퇴로를 잠시 열어줬을 뿐이다.

정부는 다시 한번 교묘하게 소급적용 이슈를 감췄고, 투기세력으로 몰리고 있는 다주택자들은 입도 뻥끗 못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서울 강남의 수십억원 하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세부담을 줄이려면 2022년까지 그 외 주택을 웬만하면 처분하라는 압력이다. 어떤 이유로 다주택자가 됐든, 그동안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왔든 따지지 않고 무조건 2023년부터는 장특공제를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말을 믿고 관련 세법을 신뢰한 국민인데, 다주택자라는 이유만으로 소급입법의 피해자로 몰리고 있다.이처럼 부동산 관련 법률의 소급적용 잣대가 오락가락하는 걸 지켜보는 입장도 불안 불안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 정의를 세우는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에 가깝다. 헌법소원이나 위헌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져 관련 규제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둘째 문제다. 그 전에 정부 부동산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스물여섯 차례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이 무용지물이 되는 과정에서 '정책 신뢰가 남아있기나 한가'라고 묻는다면 물론 반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