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냐 돈이냐…애플 직원들의 선택은 [실리콘밸리 나우]

구글 애플 아마존 떠나는 직원들
'관료제'된 빅테크에 실망
재택근무 장기화에 돈보다 '가족'

스타트업에서 능력 발휘 욕구 커
돈 몰리는 곳에서 '일확천금' 노리기도
미국 뉴욕에 있는 애플 스토어. 연합뉴스
최근 미국의 한 온라인 게시판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습니다. 애플 본사 직원이 쓴 글로 추정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격 근무가 시작된 지난해 여름, 우리 가족은 베이지역(Bay Area.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 등을 포함하는 광역도시권) 에서 토론토로 이사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토론토에 머물렀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아내는 미국 회사에서 해고됐고 토론토에서 새 직장을 찾았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옮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가족들은 다시 베이지역으로 이사가는 걸 싫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 급여가 캐나다보다 훨씬 많습니다. 나의 일을 사랑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과 함께 있고 싶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합니까.
설문에 139명이 참여했는데 결과는 압도적이었습니다. 73.4%인 102명이 'Stay in Toronto'를 추천했습니다. 'Move back to Bay area'를 고른 응답자는 23명(16.5%)에 그쳤습니다.

댓글 반응도 '토론토 스테이(stay)'에 치우쳤습니다. '겨울이 오고 있다', '미국 회사의 월급이 더 많다'며 실리콘밸리 컴백을 종용하는 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댓글은 '가족이 최우선', '토론토에서도 괜찮은 회사를 찾을 수 있다', '토론토에선 베이지역보다 월급이 40~50% 정도 적어도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직장인들이 세계 최대(시가총액 기준) 기업이자 빅테크(Big Tech)로 불리는 애플을 퇴사하고 토론토에 정착하는 게 여러 측면에서 옳다는 의견을 낸 것입니다.
애플 로고. 한경DB
빅테크는 애플을 포함해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까지 누구나 다 아는 초대형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을 뜻합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에 '최고의 인재'라는 세간의 평가까지 더해져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습니다. 최근 현지 언론에서도 '빅테크(Big Tech)' 직장인들의 이직 관련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구글, 애플, 아마존에서 직원들이 떠난다

지난 6일(현지 시간) 미국의 경제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빅테크들이 직원들의 사직 행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마켓워치는 이 기사에서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직원들이 스타트업, 신생 공기업 등으로 이직하고 있는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로버트하프인터내셔널이 정보기술(IT) 전문가 약 2800명에게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이 중 '3분의 1'이 '향후 몇개월 내에 새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음이 뜬 빅테크 직원들을 잡기 위한 신생기업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컴퓨팅기술 관련 산업협회인 'CompTIA'에 따르면 지난 6월 미국 IT 산업에서 일자리가 약 36만5000개가 공개됐는데 이는 2019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빅테크직원들의 이직 원인은 뭘까요.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바꾼 근무 환경을 꼽습니다. 재택근무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깨달은 빅테크 직원들이 '사무실 복귀'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겁니다. '대기업'으로 변해 과거만큼 민첩하지 않은 빅테크 조직문화에 대한 실망감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아담 갈린스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는 "적어도 한 주에 2번은 회사에 나가야하는 것에 대한 반감, 외부의 비판이 거센 거대한 관료제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좌절, 자신의 직업을 재평가하게 한 코로나19 번아웃의 영향 등이 '빅테크 직원들의 이직'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구글 실리콘밸리 본사의 간판. 연합뉴스
빅테크에서 쌓은 노하우를 좀 더 자율적인 분위기의 스타트업에서 발휘하고 싶어하는 욕구도 이직의 이유로 평가됩니다. 아마존 알렉사 사업부의 총괄 책임자(general manager)를 그만두고 고령층을 위한 인공지능(AI)·로봇 스타트업 '인튜이션 로보틱스'의 최고 제품 책임자(CPI)로 이직한 란 모카디는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1년 간 집에 있으면저 자신을 재평가하게 됐다"며 ""아침에 일어나서 사람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것에 매료됐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상장으로 '일확천금' 노리는 직장인들

월스트리트의 풍부한 유동성이 스타트업 등 중심의 비상장기업 기업공개(IPO)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일확천금'의 기회가 늘어난 것도 '빅테크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투자은행(IB) 전문 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IPO 제안은 84건 규모는 504억달러로 지난해(65건, 387억달러) 대비 금액과 건수 모두 압도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시장도 뜨겁습니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1500억달러 규모 7000개의 딜이 진행됐습니다. 지난해 연간 기준 거래 건수가 1만2362건, 금액은 1643억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초호황'인 셈입니다. 지난 2분기에만 1억달러 규모 이상의 메가딜이 200건 가까이 체결됐다고 합니다. 지난해 페이스북에서 일하다가 스타트업 '타이거그래프'로 옮긴 렌추 송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직원들과 더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일이 더 빨리 진행된다"고 말했습니다. 세일즈포스닷컴에서 일하다가 신생기업 코파도로 옮긴 팻 맥퀸은 "코파도에선 다른 사람의 전략을 실행하는 게 아닌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서 일하는 게 흥미롭다"고 이직의 장점을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로 기업 경영에 작지 않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아직까지 펜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습니다. 선망의 대상 실리콘밸리 '빅테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직원 이탈이 한국엔 어떤 형태로 영향을 주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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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