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격변…삼성만 주력사업 10년째 그대로

[현장에서] 송형석 산업부 기자

애플, 휴대폰 기업서 플랫폼社로 진화
구글은 VC로 변신…160개社 사들여
아마존 베이조스, 우주선 타며 '광폭행보'

국내 대기업들도 변신 위해 몸부림
SK 정유사업 축소, LG는 폰사업 포기
사진=뉴스1
“성장이 멈춘 거인.” 삼성전자처럼 돈을 잘 버는 기업의 주가가 8만원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의 분석이다. 삼성전자가 한국을 대표하는 우량 기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5년 후, 10년 후의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의 가석방 결정이 시장에 전해진 10일 삼성전자 주가는 1.6%나 하락했다. “시장은 누가 삼성을 이끄는지보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라고 이 관계자는 지적했다.

오는 13일 풀려나는 이 부회장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발빠른 투자 결정이 필요한 분야가 한두 곳이 아니다. 법률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오랫동안 챙기지 못한 조직도 추슬러야 한다. 벌써부터 삼성에 메가톤급 인사와 조직 개편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투자자와 조직원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일이다. 짧게 보면 10년, 길게 보면 20년째 그대로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이 법률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사이 글로벌 경쟁자들은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신을 꾀했다. 코로나19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만들었다. 인터넷 서비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스마트폰 시장의 오랜 경쟁자인 애플은 더 이상 휴대폰 회사가 아니다. 애플 뮤직, 아이클라우드 등의 서비스 사업을 강화해 콘텐츠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애플의 매출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안팎에 이르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에는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2024년 실제 제품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요즘과 같은 플랫폼 시대엔 전통적인 산업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애플의 설명이다.구글의 변화는 한층 더 극적이다. 이제 아무도 이 회사를 검색 포털로 부르지 않는다. 이익 기준으로 보면 이 회사의 주력 업종은 벤처캐피털이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 전체 순이익 중 20~25%가 벤처캐피털 자회사인 구글벤처스에서 나온다. 지분 투자가 아니라 경영권을 인수한 기업도 수두룩하다. 구글은 2010년부터 160여 개 기업을 사들였다. 이세돌을 이긴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로 유명한 딥마인드 등 최첨단 기술 스타트업들이 구글 문패를 달았다. 코로나19 시대의 승자로 불리는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2006년 유튜브를 인수하며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개척, 압도적인 글로벌 1위 업체로 키워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거인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과 클라우드 서비스업체인 아마존은 우주산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직접 우주선을 타며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UAM(도심항공교통), 로봇 등을 미래 먹거리로 정했다. 현대차의 영토를 자동차로 제한하지 않고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SK그룹은 친환경 사업 강화를 위해 그룹의 모체인 정유 사업을 축소 중이다. 전자와 석유화학 중심이었던 LG그룹도 배터리와 전장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적자 늪에 빠진 스마트폰 사업은 아예 포기했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70%, 영업이익의 80%가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나온다. 아직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하나같이 20년이 넘은 사업들이다. 문제는 이들 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는 데 있다. 글로벌 시장이 급변했을 때 꺼내들 ‘플랜B’가 마땅치 않다. 삼성으로 되돌아온 이 부회장이 ‘변하지 않는 기업은 죽는다’는 경영학의 오랜 격언을 꼭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