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백신 첫 최종임상 돌입…성공해도 물량 상당수 해외로 나간다

단백질 재조합방식 'GBP510'
부작용 적고 가격도 저렴
美·유럽 허가사례 아직 없어

국제민간기구서 4천억 지원 받아
정부, 지원 거의 않고 '생색내기'

전문가 "개발도 안 된 백신에
정부 과도한 기대는 금물"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판교테크노밸리 연구소에서 백신 개발을 위한 약물 실험을 하고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공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이 탄생해 상용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상시험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전방위로 지원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BP510’에 대한 임상 3상을 승인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해외 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산 백신 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전날 발언의 연장선상이었다.하지만 같은 날 기자간담회를 연 김강립 식약처장은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SK 백신을 우리가 먼저 맞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우선 배정 여부는 국제 민간기구인) 전염병대응혁신연합(CEPI)과 SK 간 계약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개발 자금 전액인 3억8350만달러(약 4408억원)를 CEPI로부터 지원받은 만큼 국내 기업이 개발했더라도 우리 정부가 우선 배정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의미다. 모더나 백신 공급 차질로 궁지에 몰린 정부가 그동안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으면서도 한국산 백신으로 ‘생색내기’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 개발은 선두권

GBP510의 임상 3상 돌입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다. 전통적인 백신 제조 방식인 단백질 재조합 백신으로 임상 3상에 들어간 회사는 미국 노바백스와 한국 SK바이오사이언스, 중국 시노팜 등 일부 회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은 2~8도 냉장 보관이 가능한 데다 화이자, 모더나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보다 싸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란 분석이다.임상 3상은 ‘비교 임상’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임상 시험자가 수만 명 필요한 기존 유효성 임상 방식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수천 명 규모 피시험자를 대상으로 기존 허가 백신 대비 효과를 입증하면 된다. GBP510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비교한다. 코로나19 백신을 비교 임상하는 건 프랑스 발네바사(社)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다. 임상 대상자는 한국,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에서 총 3990명(시험백신 3000명, 대조백신 990명)에게 0.5mL씩 4주 간격으로 2회 접종한 뒤 안전성과 중화항체 증가율 등을 비교 평가한다.

한국 백신 수급에 도움 될까

GBP510은 업계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백신으로 평가받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GBP510과 다른 단백질 재조합 방식의 백신 후보물질인 NBP2001의 임상 1상을 동시에 진행해 효과가 더 좋은 물질로 임상 3상에 들어갔다. 임상 1상 중간 결과에선 성인 80명 모두에게서 중화항체가 형성됐다. 100% 확률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항체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CEPI도 GBP510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알아봤다. CEPI는 2017년 설립된 국제 민간기구다. CEPI는 차세대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젝트 ‘웨이브2’로 선정해 개발자금 3억8350만달러를 전액 지원했다. 웨이브2는 CEPI가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시작한 프로젝트다.다만 업계에선 CEPI로부터 지원받은 탓에 국내 공급이 기대만큼 많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CEPI 자금을 지원받을 경우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 주도로 180여 개 국가가 참여하는 코백스 퍼실리티에 백신을 우선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코백스 퍼실리티에 상당량을 우선 공급해야 하는 건 맞다”며 “하지만 양사 간 협상에서 한국에 배정할 물량도 상당수 확보했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정부가 성과가 나올 때가 되자 ‘숟가락’을 얹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백신 개발 회사 대표는 “개발 비용 지원은 CEPI가, 백신 개발은 민간 기업인 SK가 진행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내년 1분기 3상 임상 중간분석 결과가 나오면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첫 접종 시기는 내년 상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허가 과정에서 지연될 수 있다.다른 국내 기업들도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DNA 방식 백신을 개발하는 제넥신은 현재 임상 1·2a 단계다. GBP510과 같은 단백질 재조합 방식인 유바이오로직스와 바이러스벡터 방식인 셀리드 역시 같은 단계다. 이들은 모두 하반기 임상 3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