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극장…"청계천까지 삥 둘러 줄 서서 영화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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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악화로 이달 31일 영업종료…"바글바글하던 극장 휑해져"
"우리 때는 토요일까지 일을 해서, 주로 일요일에 극장을 찾았는데 최소 1시간은 줄을 서야 했죠. 오락거리라고는 영화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종로 일대 영화관을 자주 찾았다는 김덕준(60)씨는 11일 종로3가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극장을 오랜만에 찾아 이렇게 말했다.
의정부에서 먼 걸음을 했다는 김씨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아쉽다는 말을 반복했다. 젊은 시절 추억이 있는 극장이 곧 문을 닫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CGV, 롯데시네마 등 브랜드 영화관에 관객들을 뺏겨온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 확산으로 경영난이 악화한 서울극장은 오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이날은 그동안 받았던 관객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선착순으로 무료 영화 티켓을 배부하는 '굿바이 상영회' 첫날이다. 아쉬움을 안고 무료 티켓 배부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15명 안팎. 무더위와 코로나19 4차 유행의 여파 탓인지 극장은 마지막 이벤트에도 비교적 한산했다.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은 김정수(42)씨는 "학생 때부터 '쥬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영화들을 여기서 봤다"며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개봉 때 장동건 씨도 무대 인사를 왔었다.
그때는 영화 개봉을 하면, 극장 옆 카페 2층에서 배우들이 앉아 얼마나 관객들이 줄을 섰는지 흥행을 점쳐봤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무료 티켓으로 '모가디슈'를 본다는 이모(46)씨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사랑과 영혼'(1990)을 보러 서울극장에 처음 왔었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동네마다 들어선 멀티플렉스를 찾아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보지만, 과거에는 극장을 옮겨 다니며 영화를 봤다고 추억했다.
이씨는 "옛날에는 종로에 극장이 많았지만, 극장마다 상영 영화가 한 개씩밖에 없었다"며 "서울극장에서 '코만도'를 하면, 다른 데서 '이티'를 하는 식이어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극장을 골라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1978년 9월 17일 한국 영화 '마지막 겨울'을 첫 상영작으로 문을 연 서울극장 역시 스크린 1개로 시작했다.
제작사 합동영화사의 고(故) 곽정환 회장이 재개봉관이었던 세기극장을 인수해 개봉관으로 위상을 굳혔고, 스크린을 늘려 총 11개관을 갖추면서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로 자리매김했다.
80·90년대 한국 영화 부흥기에는 단성사와 피카디리, 허리우드, 스카라, 국도극장, 대한극장 등과 함께 친구, 연인, 가족들이 찾는 문화중심지로 명성을 누렸다.
종로 극장가가 쇠퇴하면서는 최신 개봉작들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예술 영화들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상영하며 예술 영화관으로서 영역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관객들이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계속 악화했고 팬데믹이 직격탄이 됐다.
서울극장에서 10년 넘게 미화원으로 일했다는 한 직원은 "예전에는 극장이 바글바글했다.
천명 넘게 들어가는 상영관에는 팝콘이 나뒹굴었는데, 점점 사람이 줄어들었고, 코로나19 이후에는 영화관 자체가 휑해졌다"고 전했다. 시네필들은 이런 영화의 산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어린왕자'(2007) 연출과 '나의 결혼 원정기'(2005) 각본 등을 맡은 최종현 감독도 이날 서울극장을 찾아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 없는 곳"이라며 영업 중단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요즘 백화점 명품매장 앞에 오픈 전에 줄을 서는 것처럼 예전에는 서울극장 앞에 줄이 청계천 길을 삥 둘렀다.
지방에서 전날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여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니 참 서글프다"고 말했다.
비주류 영화들을 찾아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울극장을 이용했었다는 정모(41)씨는 "서울극장이 보통 영화관에 잘 걸리지 않는 영화들을 상영해줘서 찾았었는데, 이런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또 하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극장을 처음 찾았다는 한 20대 관객도 '폭스캐처'를 관람할 예정이라며 찾기 힘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문을 닫게 된 것을 씁쓸해했다.
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는 영화관의 문은 닫지만, 영화에 국한되지 않은 콘텐츠 투자 및 제작과 새로운 형태의 극장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극장 건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합동영화사 관계자는 "지금껏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대중과 호흡해 왔던 합동영화사의 첫걸음은 종로3가 서울극장의 영업 종료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우리 때는 토요일까지 일을 해서, 주로 일요일에 극장을 찾았는데 최소 1시간은 줄을 서야 했죠. 오락거리라고는 영화밖에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종로 일대 영화관을 자주 찾았다는 김덕준(60)씨는 11일 종로3가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극장을 오랜만에 찾아 이렇게 말했다.
의정부에서 먼 걸음을 했다는 김씨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아쉽다는 말을 반복했다. 젊은 시절 추억이 있는 극장이 곧 문을 닫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CGV, 롯데시네마 등 브랜드 영화관에 관객들을 뺏겨온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 확산으로 경영난이 악화한 서울극장은 오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이날은 그동안 받았던 관객들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선착순으로 무료 영화 티켓을 배부하는 '굿바이 상영회' 첫날이다. 아쉬움을 안고 무료 티켓 배부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15명 안팎. 무더위와 코로나19 4차 유행의 여파 탓인지 극장은 마지막 이벤트에도 비교적 한산했다.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은 김정수(42)씨는 "학생 때부터 '쥬라기 공원',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영화들을 여기서 봤다"며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개봉 때 장동건 씨도 무대 인사를 왔었다.
그때는 영화 개봉을 하면, 극장 옆 카페 2층에서 배우들이 앉아 얼마나 관객들이 줄을 섰는지 흥행을 점쳐봤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무료 티켓으로 '모가디슈'를 본다는 이모(46)씨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사랑과 영혼'(1990)을 보러 서울극장에 처음 왔었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동네마다 들어선 멀티플렉스를 찾아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보지만, 과거에는 극장을 옮겨 다니며 영화를 봤다고 추억했다.
이씨는 "옛날에는 종로에 극장이 많았지만, 극장마다 상영 영화가 한 개씩밖에 없었다"며 "서울극장에서 '코만도'를 하면, 다른 데서 '이티'를 하는 식이어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극장을 골라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1978년 9월 17일 한국 영화 '마지막 겨울'을 첫 상영작으로 문을 연 서울극장 역시 스크린 1개로 시작했다.
제작사 합동영화사의 고(故) 곽정환 회장이 재개봉관이었던 세기극장을 인수해 개봉관으로 위상을 굳혔고, 스크린을 늘려 총 11개관을 갖추면서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로 자리매김했다.
80·90년대 한국 영화 부흥기에는 단성사와 피카디리, 허리우드, 스카라, 국도극장, 대한극장 등과 함께 친구, 연인, 가족들이 찾는 문화중심지로 명성을 누렸다.
종로 극장가가 쇠퇴하면서는 최신 개봉작들뿐만 아니라 여러 독립·예술 영화들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상영하며 예술 영화관으로서 영역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관객들이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계속 악화했고 팬데믹이 직격탄이 됐다.
서울극장에서 10년 넘게 미화원으로 일했다는 한 직원은 "예전에는 극장이 바글바글했다.
천명 넘게 들어가는 상영관에는 팝콘이 나뒹굴었는데, 점점 사람이 줄어들었고, 코로나19 이후에는 영화관 자체가 휑해졌다"고 전했다. 시네필들은 이런 영화의 산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어린왕자'(2007) 연출과 '나의 결혼 원정기'(2005) 각본 등을 맡은 최종현 감독도 이날 서울극장을 찾아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 없는 곳"이라며 영업 중단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요즘 백화점 명품매장 앞에 오픈 전에 줄을 서는 것처럼 예전에는 서울극장 앞에 줄이 청계천 길을 삥 둘렀다.
지방에서 전날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여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니 참 서글프다"고 말했다.
비주류 영화들을 찾아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울극장을 이용했었다는 정모(41)씨는 "서울극장이 보통 영화관에 잘 걸리지 않는 영화들을 상영해줘서 찾았었는데, 이런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또 하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극장을 처음 찾았다는 한 20대 관객도 '폭스캐처'를 관람할 예정이라며 찾기 힘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문을 닫게 된 것을 씁쓸해했다.
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는 영화관의 문은 닫지만, 영화에 국한되지 않은 콘텐츠 투자 및 제작과 새로운 형태의 극장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극장 건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합동영화사 관계자는 "지금껏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대중과 호흡해 왔던 합동영화사의 첫걸음은 종로3가 서울극장의 영업 종료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