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정책 무능, '징벌적 손해배상'감이다

일자리·부동산에 백신 혼란까지
숱한 실패 반성 없이 '더 세게!'
'죽비 맞았다'면서 국정 도돌이표

민생 무너져도 '票계산 정치'
알면서도 추종한 관료들도 공범
국민에 피해 주면 '배임' 아닌가

오형규 논설실장
“몰라서일까, 알면서도일까?”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정책의 배신》에서 던진 질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성공한 정부’이길 바랄 텐데, 국가시스템에 막대한 충격을 주지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정책들을 폭탄처럼 연이어 투하한 데 대한 의문이다. 그런 폭탄 투하가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새삼 궁금증을 더한다.

정말 몰라서였을까.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서슬 퍼렇던 재건축 2년 거주 의무화, 비(非)아파트 임대사업자 폐지 방침에서 슬쩍 후퇴한 것을 보면 정말 그럴 줄 몰랐던 듯싶다. 알량한 지식과 이념적 도그마로 강행했다가 전세대란에 기름을 부었음을 보고 나서야 화들짝 놀란 꼴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정권 금기어가 된 소득주도성장은 허명만 난 교수 출신 참모들에게 네다바이 당한 듯하다. 경제 작동원리에 깜깜한 정권이 소위 ‘적폐세력’과 반대로만 하면 될 줄 알았을 공산이 크다. 공무원과 공공알바만 늘린 일자리 참사, 주거 고통을 안긴 부동산 실정, 자가당착의 탈원전, 만인의 투쟁이 된 비정규직 제로, 자영업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최저임금 과속은 관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애초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뒤늦게 잘못된 걸 알고도 되돌릴 타이밍과 명분을 못 찾아서다. 만약 처음부터 알고도 그랬다면 사악한 정부겠지만 설마 그럴 리야.

4·7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 ‘죽비를 맞았다’며 금방 달라질 것처럼 시늉을 하긴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또 도돌이표다. 국정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대처할 실력이 부족한 데다 전문가를 배척하고 ‘우리 편’이 아니면 쓰지 않는 편협함 탓이다. 방역과 백신까지 다 꼬인 채 혼란에 빠진 것도 이유가 다르지 않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선진국 소리까지 듣게 된 나라의 정부가 이토록 ‘정책맹(盲)·경제맹’인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1980년대 대한민국을 식민지·반봉건·독점·매판 자본주의로 규정한 이념서적만 탐독한 586의 한계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반성문에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독재와의) 싸움에 승리한 이후 변화와 운영에 필요한 역량을 축적하고 발휘하는 데 부족함이 많았다.” 기득권이 된 자신의 세대가 “새로운 미래세대를 위해 준비하고 배려하고 양보해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그렇게 느꼈으면 당장 그렇게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조국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듯, 여당이 변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진영 전체가 거대 생계공동체가 됐고, 권력과 기득권의 단맛을 보며 최소 2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는 암묵적 컨센서스도 있다. 국정의 절대기준이 ‘표(票)’이고, 표 되는 것이라면 뭐든 다하는 배경이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은 야당과의 타협 자체를 부정하며 ‘더 세게!’를 외친다. 그런 지지층에 구애하는 대권주자들의 공약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아예 사회주의로 갈 기세다. 예선(당내 경선)의 ‘아무 말 대잔치’가 본선(대선)에 가면 달라지길 기대할 뿐이다.

이런 정권에 무소신·무능력으로 맹종부화한 ‘늘공(직업공무원)’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야밤에 원전 관련 문서를 삭제한 ‘신내림 공무원’만이 아니다. 26번 부동산 대책을 짜는 동안 국토교통부 관료들이 그 파장과 문제점을 몰랐을까.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걸 몰라서 기획재정부가 통계 분칠에 급급했을까. 격차와 차별의 근원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깰 노동개혁의 절실함을 고용부가, 파국이 예고된 연금개혁의 시급성을 보건복지부가 몰라서 못본 체하는 것일까.

어느덧 다음달 6일이면 경제팀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가 재임 1000일이다. 이 정부에서 3년 가까이 경제팀을 이끈 그에게 ‘천일의 홍(洪)’이란 별명이 더해질 것 같다. 그 장수 비결을 보면서 엘리트 관료들이 정권 서슬에 입 닫고, 실세들과 척지지 않으면서, 자리 보전하고, 입신양명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숱한 정부 실패가 드러났음에도 반성과 변화 대신 변명과 남 탓뿐이니 국민은 기가 막힌다. 손대는 것마다 국민에게 고통을 안기는 정부라면 대국민 배임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그 피해는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세입자 등 집단세력화하기 어려운 약자들에게 전가된다. 나라의 주주인 국민을 괴롭히는 정권의 무능이야말로 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징벌적 손해배상’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