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식욕·브랜드·추억의 냄새…우리는 철저하게 지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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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과학책과학은 실험실, 연구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생활 곳곳에 과학이 깃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세상 모든 것이 과학이다. 생활 속의 과학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여럿 나왔다.
《식욕의 과학》(엔드루 젠킨슨 지음, 현암사)은 먹기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과학, 의학, 인류학을 오가며 밝혀낸다. 20년 넘게 영국 런던유니버시티 칼리지 병원에서 일한 의사가 쓴 만큼 기초가 탄탄하다. 몸에 들어온 에너지가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밝히는 대사학부터 시작해 영양학, 운동, 호르몬, 다이어트 방법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직접 만난 환자들의 사례와 최신 과학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체중 조절은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굶어서 억지로 체중을 빼려고 하면 대사활동이 느려져 더 살이 찌기 쉬운 체질로 변한다. 다이어트 후 요요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식욕은 의식적으로 조절되지 않으므로 그런 생각으로는 살을 뺄 수 없다. 몸이 가벼워지려면 몸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신호를 바꿔야 한다.” 저자는 집에서 직접 조리한 양질의 음식을 먹고, 1주일에 한두 번씩 꾸준히 운동만 해도 신호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뇌과학 마케팅》(매트 존슨·프린스 구먼 지음, 21세기북스)은 신경과학자와 신경마케팅 전문가가 소비 심리의 이면을 들여다본 책이다. 1990년대 진행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와 코카콜라를 놓고 어떤 게 더 맛있느냐고 물었다. 53 대 47로 펩시가 앞섰다. 브랜드를 공개한 상태에선 20 대 80으로 코카콜라가 압도적이었다. 뇌과학자들이 비밀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 실험 결과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뇌의 측두엽이 반응했다. 오랜 기간 ‘코카콜라=행복’이란 메시지를 담은 마케팅을 펼친 결과, 코카콜라라는 말만 들어도 뇌가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면 더 고양된 경험을 하게 되는 까닭, 애플 스토어에선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 해변에 가면 코로나 맥주를 더 찾게 되는 이유 등이 책을 통해 밝혀진다. 인지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소비자의 자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내포한 메시지, 매장 안 향기와 음악 등 정교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이 좌우된다.
《향의 과학》(히라야마 노리아키 지음, 황소자리)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이용해 온 ‘향(香)’의 정체와 효능을 과학자의 눈으로 꼼꼼하게 탐색한다. 불과 두 세기 전까지만 해도 향은 식물에서만 얻었다. 재스민에서 향을 얻으려면 새벽에 꽃을 따야 했다. 꽃 1㎏(약 2만 송이)에서 얻는 향의 원료는 1g에 불과했다. 천연향료가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이유다. 1800년대에 인공 향료가 개발된 이후 향은 인간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라벤더의 리날룰, 페퍼민트의 멘톨, 사향의 머스크 케톤 등 인류가 사랑하는 모든 향의 분자를 인위적으로 합성할 수 있다.
책은 향을 맡으면 옛날 기억이 떠오르는 ‘프루스트 효과’의 비밀도 밝힌다. “후각 정보는 대뇌에서 이를 해석하기 전에 원시적인 뇌 부분에서 감지하고, 우리의 의식보다 빠르게 몸 안에서 그에 대처하는 활동이 일어난다. 냄새를 맡는 순간, 반사적으로 모종의 감정이 솟아나는 것이다.” 재스민 향과 동물의 분뇨 냄새가 사실은 같은 분자라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