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도 AZ 잔여백신 접종 허용"…다급한 정부 '궁여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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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연령 한 달 만에 번복방역당국이 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19 백신의 접종 가능 연령대를 ‘50세 이상’에서 ‘30세 이상’으로 낮췄다. 지난달 1일 희귀 혈전증 부작용을 이유로 AZ 백신 접종 연령대를 상향한 지 한 달 만에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당국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접종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에선 “면밀한 과학적 검토 없이 연령대를 조정해 안전성 판단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 "결정 기준 뭐냐"
"면밀한 과학적 검토없이 변경
안전성 판단 책임 개인에 떠넘겨"
mRNA 백신 부족한데다
18~49세 예약률 60% 그쳐
모더나 수급 차질 해결 못하면
추석전 1차접종 70% 장담못해
한 달 만에 50세→30세 이상으로 번복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3일 브리핑에서 “오늘부터 위탁의료기관, 보건소 등에서 AZ 잔여백신을 30세 이상 희망자에게 접종할 수 있도록 접종안을 변경해 시행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세는 거세지는데 현장에선 AZ 잔여백신이 연령 제한으로 인해 버려지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방역당국은 사전예약 시스템을 통한 AZ 백신 접종은 원래대로 50세 이상에게만 하되, 30~40대 중 AZ 잔여백신을 맞고 싶은 사람은 접종을 허용해주기로 했다. AZ 백신을 1차로 맞은 30~40대에게 2차 땐 화이자 백신을 맞히는 ‘교차접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날부터는 2차 때도 AZ 백신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방역당국이 AZ 백신의 접종 연령대를 상향한 지 한 달 만에 결정을 번복하면서 의료계에선 ‘결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1일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TTS) 등 백신 부작용을 감안해 AZ 백신의 접종 연령대를 30세 이상에서 50세 이상으로 높였다. 당시 정 청장은 “50대부터는 명백하게 위험(부작용)보다는 이득(바이러스 예방)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정 청장은 “연령별 백신 접종의 이득과 위험은 방역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며 “4차 유행이 진행 중인 상황에선 이득이 조금 더 상대적으로 커진다”고 했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백신 접종 연령대는 정확한 과학적 연구 결과에 근거해 일관성 있게 결정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충분한 설명 없이 연령대를 낮추면 일선 접종 현장의 혼란만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백신에 대한 안전성 판단을 국민 개개인에게 전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방역당국은 “30~40대 접종자 모두에게 강제적으로 AZ 백신을 맞히는 게 아니라 문제가 없다”며 “백신을 일찍 맞고 싶은 사람이 접종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했다. 사실상 백신 접종 시점을 앞당기고 싶으면 접종자가 백신 부작용을 어느 정도 감수하라는 것이다.
18~49세 예약률도 목표치 미달
이번 AZ 백신 접종 연령 하향은 모더나 백신 수급이 불투명해진 데 따른 궁여지책이라는 평가다. 방역당국은 접종 연령 상향을 결정한 지난달만 해도 화이자·모더나 등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이 계획대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모더나가 갑자기 이달 공급하기로 했던 물량 중 절반 이하만 줄 수 있다고 알려오자 부랴부랴 AZ 백신 접종 연령 하향을 검토했다는 것이다. 이날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을 중심으로 한 대표단이 모더나 본사 방문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지만 모더나 공급 차질이 세계적 문제인 만큼 한국만 밀린 물량을 앞당겨 받는 것은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18~49세 사전예약률도 방역당국의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8~49세 가운데 10부제 사전예약 기간이 종료된 480만5592명(생일 끝자리가 9, 0, 1인 사람)의 예약률은 60.4%에 그쳤다. 접종 대상 10명 중 6명만 백신 접종을 신청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추석 전에 국민 70%의 1차 접종을 마치겠다는 정부 목표에 차질이 우려된다.정부는 이날 화이자 측과 내년도 코로나19 백신 3000만 회분을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들 백신은 고위험군 등을 대상으로 한 ‘부스터샷(추가접종)’에 쓰일 예정이다. 정 청장은 “수급 불안정성,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 개발 등을 고려해 2000만 회분 추가 계약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